사랑의 온도계
사랑의 온도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12.0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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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마른 사람들이/ 성긴 입김으로/ 마지막 겨울을 달래는 곳/ 불암산 끝자락, 중계동 104번지// 고향땅 여기서 얼마나 되나/ 휑한 쌈지공원 서성이며/ 잿빛 소맷자락으로 훔쳐 낸/ 헤펐던 눈물// ...(중략)... 불지 않아도 날아갈 사람들이/ 득도(得道)에 목마른 수행자처럼/ 몇 줄기 겨울 햇살에도 시린 등을 내어 주는/ 불암산 끝자락, 달빛이 떠나가는 동네// 눈물 마른 사람들이/ 성긴 입김으로/ 마지막 겨울을 달래고 있다(자작시 ‘백사마을에서’)

지난 주말, 불암산 끝자락에 위치한 ‘백사마을’을 찾았다. 더 정확한 행정구역은 서울시 노원구 중계본동 104번지. 서울에 남은 마지막 달동네로 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곳이다. 이곳이 백사마을로 불리게 된 것은 번지수가 104번지이기 때문이다. 60년대에 서울시에서 청계천, 용산 등지의 철거민들을 이곳으로 이주시켜 살게 하면서 형성된 마을로 근 5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이제는 이곳도 재개발계획의 매서운 바람이 불어 닥치고 있다. 일부 주민은 이미 이주를 시작했고, 아직 옮겨 갈 보금자리를 정하지 못한 딱한 처지의 주민들이 마지막 겨울의 찬바람을 막으며 고된 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추운 겨울이면 TV 화면을 통해 봉사지역으로 자주 등장하던 이곳을 그나마 남은 흔적이라도 간직하기 위해 렌즈에 소중히 담아 보려 찾았지만 주민들의 팍팍한 삶의 모습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행위(?)는 겸연쩍고 조심스러울 따름이었다. 그것은 고단한 삶으로 점철된 그들의 힘든 모습을 마치 구경거리인 양 기웃거리는 것 같아 마을을 둘러보는 내내 필자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더군다나 지난해까진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끼니 걱정 없이 지냈는데 올해는 발길이 뚝 끊겨 겨울나기가 막막하다는 어느 90세 할머니의 긴 한숨 앞에서는 미안한 마음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갑작스런 반짝 추위도 야속하지만 연탄 지원도 절반으로 줄어 겨울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그들의 하소연을 뒤로 한 채 무거운 발길을 돌리자 매서운 바람 한 줄기가 필자의 목덜미를 매정하게 훑고 지나갔다.

다사다난했던 신묘년 한 해도 물 흐르듯 흘러 어느덧 마무리를 향한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각자의 삶을 꾸려가느라 한눈 팔 겨를이 없지만 항상 이맘때가 되면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한번쯤 돌아볼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해에는 공교롭게도 모금기관 관계자들의 부정이 드러나 이웃을 돕는 손길이 그다지 따뜻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도 그 열기는 살아나지 않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올 1년 동안 목표 모금액이 3천 3백 94억 원이라고 하는데 얼마 전까지 불과 1천 5백억 정도만 모여 ‘사랑의 온도계’ 수은주 100도에는 아직 한참 못 미친 42.5도에 달하고 있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재작년 이맘때엔 49.1도였고, 작년은 48.7도였다고 한다. 갈수록 메말라 가는 인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 착잡하기만 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구세군 자선냄비가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시종식을 갖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한 자선냄비 모금을 시작했다. 1891년 겨울, 성탄절을 앞두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해상에서 대형 선박이 좌초되며 발생한 1,000여 명의 난민을 구제하기 위해 그 지역 구세군 사관이었던 조셉 맥피(Joseph Mcfee) 정위(正尉)가 고안한 ‘솥’이 자선냄비의 시초였다. 당시 그 솥엔 시민들의 정성이 담긴 지폐와 동전이 순식간에 가득 차 다행히 난민들에게 따뜻한 수프를 먹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이웃을 돕기 위해 새벽까지 고민하며 기도하던 한 구세군 사관의 깊은 마음은 오늘날 전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매년 실시하는 ‘구세군 자선냄비’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정신은 오늘날 우리 사회 깊숙이 파고들어 이웃사랑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하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경제상황은 그리 순탄하지는 않은 실정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자신보다 더 어려운 주변의 이웃을 눈여겨 살피며 더불어 살아가는 온정을 베푼다면, 올 겨울은 어느 해보다도 더 따뜻한 겨울이 되지 않을까.

< 김부조 동서문화사 편집부장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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