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근로자의 사부곡(思 婦 曲)
현대차 근로자의 사부곡(思 婦 曲)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11.1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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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야의 연속이었다.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작업을 하고 나오면 얼굴은 온통 페인트가루 범벅이었다.”

25년동안 현대자동차 도장공으로 일한 퇴직 근로자 박씨를 만난 건 한달 전 쯤. 20대의 그는 통풍도 제대로 되지 않는 곳에서 콜드크림을 달고 살았다고 했다. 크림을 바르지 않으면 페인트자국이 잘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기 산업화시대, 근무환경이 좋았을 리 없었다. 그저 일밖에 몰랐다. 어쩌다 하루 쉬는 날이면 동료들과 소주로 고단함을 달랬다. 돈만 잘 벌면 될 줄 알았다.

그의 자택에 걸린 큼지막한 가족사진에는 지나온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느새 장성한 자녀들은 출가해 오순도순 가정을 꾸렸다. 사진속 그는 웃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노신사의 얼굴은 쓸쓸하다. 퇴직도 하기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 생각에서다.

“옷 한 벌 제대로 못 해줬는데…참 바보처럼 산 것 같다.” 그의 옛 노랫말 같은 이 한마디에서 오늘을 사는 현대차 근로자들은 무엇을 느낄까.

최근 정부가 완성차업체의 밤샘근무에 철퇴를 때렸다.

현대차는 이제 정부 명령에 의해 야간근로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할 처지다. 하지만 이는 노조의 협조없이는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앞서 10년간 이어진 노사간 줄다리기가 이를 반증한다.

밤샘근무 해소는 직간접적으로 ‘비정규직 문제’와도 연관이 있다. 늘 ‘생산성 유지’가 쟁점인 탓이다. 노조는 노동강도 강화없는 임금유지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자신들의 고된 일을 덜어준 비정규직의 희생은 외면하면서도 제 밥그릇 챙기기에 열중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현대차 생산현장에서의 집단 사이버도박 같은 사태도 왜곡된 근무형태의 부작용일지 모른다.

며칠 전 문용문 현대차 새 노조위원장은 취임 초기부터 주간2교대제 시행과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집념을 보였다. 일방적 공언이 아닌 사측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길 기대한다.

권승혁

취재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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