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의 신비를 읽고(2)
무한의 신비를 읽고(2)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11.0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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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칸토어는 연속체 가설을 증명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연구는 무한의 연구를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수학적 체계의 연구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연속체 가설을 증명하는데 고군분투하는 칸토어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첫째는 그의 의지이다. 아무도 손대기를 꺼려하는 무한이라는 불모지에 발을 디뎌 길을 만들려고 평생을 바친 그의 의지가 진정한 학자의 태도라고 생각했다.

나는 과연 그러한 의지를 가지고 공부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칸토어만큼 어려운 문제에 매달리는 것도 아니면서 그와 같은 끈기를 가지지 못했던 나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는 무한의 신비이다. 그가 연구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나도 무한의 세계에 빠져든다. 무한의 신비로움이 나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무한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신의 영역에 들어서려고 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꾸 받았다.

책에서 읽은 문구 때문은 아니다. 말 그대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신의 영역에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칸토어가 미쳐버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시각화하여 관찰조차 불가능한 무한을 다루고자 한 그이기 때문이다.

칸토어는 크로네커 등 보수적인 수학계에 맞서 진보적 아이디어를 끝까지 지켜내고 발전시켰다. 외부 압력에 굴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 그가 나는 매우 존경스럽다.

또한, 학계의 반발로 연구에 어려움을 겪는 칸토어를 보면서, 과연 학문 연구의 자유가 허용되어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만일 학문 연구의 자유가 허용되어 있었다면 우리나라가 노벨 과학상을 하나도 수상하지 못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꼭 학계의 압력뿐만이 아니더라도, 연구하기 힘든 사회 환경 역시 외부압력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학문 연구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

겉으로만 허용된 것이 아니라, 속으로까지 정말 하고 싶은 연구를 하려는 과학자에게 아낌없는 투자와 창의적인 연구를 유도하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우리나라가 노벨 과학상을 수상하는데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권상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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