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초조, 삶의 불청객
불안과 초조, 삶의 불청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10.24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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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삭막해지는 현대인의 일상에서 불안과 초조를 호소하는 계층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무런 이유 없이 막막하고, 왠지 모를 불안함과 초조감이 엄습해 온다.

학생은 학생 나름대로 늘 더 나은 점수를 따내야 한다는 시험의 부담감에서 벗어나려 하고, 직장인은 동료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경쟁의 처절함 앞에서 떨며, 사업가는 경쟁사에게 한 치도 밀리지 않기 위해 쉴 새 없이 이어져야 하는 투자와 연구 개발의 압박감 속에서 고뇌하고, 농부는 한 해 동안 피땀 흘린 정성이 병충해나 가뭄, 그리고 홍수나 태풍으로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운동선수는 무조건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처절한 승부욕 앞에서, 그리고 예술가는 자신의 감성을 모조리 불태워 영롱한 결정체를 끊임없이 빚어내야 한다는 자신과의 싸움 앞에서 각기 초조감을 호소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성인병의 공포에 질린 중년층들은 건강을 사수하기 위한 집념이 지나친 나머지 이른바 ‘건강 염려증’ 앞에서 부들부들 떨고, 퇴직을 코앞에 둔 직장인은 만족스럽지 못한 노후대책 앞에서 깊은 고민의 밤을 하얗게 지새우기도 한다.

평소 자기가 기대한 만큼 채워지지 않는다고 초조해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더 열렬히 사랑하지 못한다고 애태우기도 하며, 하찮은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미워하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빨리 내달리지 못한다고 조급해 하고, 누군가를 완전히 용서치 못함에 마음 졸인다. 그래서 우리들 마음의 바다는 언제나 고요할 날 없는 출렁임의 연속이다.

이처럼 우리는 어느 계층 가릴 것 없이 한 가지 혹은 여러 가지의 고민과 걱정거리를 껴안은 채 매일 초조한 일상을 이어간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불안과 초조는 우리들 삶을 구성하는 일부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안고 있는 이러한 걱정거리나 고민이 실제 우리 생활에서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단 10%도 안 된다고 한다. 필자도 어디에선가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땐 그다지 마음에 깊이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몇 해 전,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초조감에 시달리며 그 엄청난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던 중, 아주 소중한 결론을 얻어 냈다.

그것은 지금껏 살아오며 품었던 여러 걱정과 고민거리가 대부분 기우(杞憂)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경우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아주 미미했다.

그런데 필자에게만 그것이 적용되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두 눈을 감고 자신이 살아 온 과거의 영상들을 찬찬히 떠올려 보시기 바란다. 그런 다음 그 동안 자신이 품었었던 갖가지 형태의 고민이나 걱정거리들이 과연 얼마나 현실로 나타났었는 가를 헤아려 보면 아마 대부분이 기우였다는 사실이 뚜렷이 드러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불필요한 생각의 낡은 틀 속에서 구태여 지지 않아도 될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짊어진 채 자신을 괴롭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이 시간, 막연한 불안과 초조에 휩싸여 있다면 이제 과감히 벗어 던져야 한다. 하루빨리 그 짐을 내려놓는 자만이 진정한 마음의 고요를 이룰 수 있고 더 알찬 미래를 열어 갈 수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마음이 초조하고 산만해지면 하던 일을 바로 멈추고 휴식하여야 한다. 초조함을 또 다른 초조함으로 대응하려 애쓰면 마음이 더욱 힘들어진다. 우리의 마음은 자기 멋대로 명령할 때보다 차분히 지시할 때 더욱 잘 반응한다고 한다. 불안과 초조감이 부글부글 끓어올라도 그것을 지긋이 어루만져 누그러뜨리려는 노력을 되풀이하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평정을 되찾게 되고 집중력도 되살아난다.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현실이 불만족스럽다고 절대 초조해 하면 안 된다. 자기 자신을 믿으며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최선을 다 하여야 한다. 비록 그것이 한계점에 도달한다고 해도 아쉬워하거나 허탈해 해서는 안 된다. 바로 그것이 우리 인간만이 빚어 낼 수 있는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김부조 시인·동서문화사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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