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인은 사람+동물 합성시킨 형상 즐겨 그려
선사인은 사람+동물 합성시킨 형상 즐겨 그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10.23 18: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슴·늑대·부엉이·곰·말·사람 등 6가지 속성 결합키도
반구대 암각화에도 형상 변형시킨 멧돼지·인물그림 있어
오늘날 하이브리드 유행하듯 선사에도 이종 재구성 시도
바위그림 유적지의 세계를 조사하는 여행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과 맞부딪치기도 하고 또 갖가지 기상천외한 형상들과도 만나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위그림 등 선사시대의 조형예술 유적지의 조사를 낭만적으로만 생각하는 듯하다. 가끔씩 주변의 사람들은 부러운 듯한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또 뭐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겠으니 동행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한다.

아마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그러한 희망 속에 담겨 있을 것이다. 낯선 곳에서의 돌발적인 상황이나 사건들과의 조우를 나름대로 머릿속에 그릴 수도 있을 것이며, 그 비일상적일 수 있는 체험들에 대한 기대들이 그러한 말들의 배경에 깔려 있을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설렘과 기대가 없다면, 그리고 짧은 시간이지만 그러한 시공간 속에 덩그맣게 내팽개쳐져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의 달콤함에 빠질 수 없다면, 그런 여행이야말로 무미건조하고 또 따분하기 그지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꼭 낭만적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 때로는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고 또 어떤 때에는 그것보다도 더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치 통과의례를 하듯 어려운 순간들과 수시로 대면해야 하고 그 과정을 견뎌야 한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은 난관들을 헤쳐 나가야 하고 또 시험들을 풀어야만 마침내 원하는 공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일들을 거친 후 조사에 임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동경의 눈빛을 보내기 일쑤이다.

아마도 그런 시선의 의미는 고통스러운 여행 끝에 만나는 꿀보다 더 달콤한 특이 체험, 즉 옛사람들의 체취가 담긴 형상들과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고 할지라도 유적지 앞에만 서면 그동안의 고초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이고, 또 그 순간은 환희와 감탄 그리고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성취감으로 인하여 스스로 고무되며 동시에 자신의 존재에 대한 엄정한 성찰을 하게 된다.

유적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걸음을 붙들어 매는 것들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 만은, 그 가운데서 한 가지는 하이브리드(hybrid) 형상이다. 흔히들 ‘합성동물’이라는 말로 옮겨서 쓰는 데, 요즘 들어서 우리 사회에서도 이 말이 유행하고 있다. 소위 ‘하이브리드 카’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이브리드 카는 전기와 기름의 두 가지 연료를 동시에 혼용하 데에서 붙여진 것이다. 그러니까 하이브리드 형상도 두 가지 이상의 상이한 동물을 결합시켜서 만든 이미지를 이르는 말이다.

하이브리드 형상의 가장 전형적이자 대표적인 고형(古形)으로는 프랑스의 ‘레 트로아 플레르’ 동굴 벽화 속의 소위 ‘뿔이 달린 신’ 또는 ‘주술사’이다. 이 형상은 순록의 뿔과 늑대의 귀, 부엉이의 눈, 곰의 앞발, 말의 꼬리 그리고 사람의 다리를 하고 있는 매우 특이하고 또 복합적인 반수반인 형상이다. 이 형상은 다른 동물들에 비할 때 높은 곳에 그려져 있으며, 매우 정교하고 또 크게 그려져 있다. 이 형상을 직접 조사한 사람들은 이 형상이 매우 세심하게 그려져 있음과 더불어 다른 어떤 동물 형상과 비교하여도 뒤떨어지지 않는 조형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사슴, 늑대, 부엉이, 곰, 말 그리고 사람 등 모두 여섯 개 이상의 다른 속성을 지닌 동물들과 함께 사람을 하나의 이미지로 용해시켜 재창조하였다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이렇듯 종이 서로 다른 동물들의 부분 부분들을 재구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형상 가운데서 어색함이나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살필 수 없으며, 오히려 너무나도 당당하고 또 신비로운 모습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형상을 남긴 화가의 뛰어난 조형 능력에 새삼스럽게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선사 시대의 바위그림 속에도 이와 같은 하이브리드 형상들이 지속적으로 그려져 왔다. 예를 들면, 몽골의 자프항 아이막 에르덴 하이르항 솜의 ‘으브르 바양 아이락’ 암각화 속에는 사슴의 머리에 돼지의 몸통 그리고 다리는 사람의 것 같은 형상이 아래의 다른 형상들에 비할 때 훨씬 크게 그려져 있었다. 같은 몽골의 오브스 아이막 우믄고비 솜 ‘후렌 우주르 하단 올’ 암각화 유적지에서는 개의 몸통에 사슴의 뿔이 달린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카자흐스탄의 ‘탐갈르이’ 암각화 속에는 말머리에 산양뿔이 달린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같은 유적지에서는 태양과 사람이 결합된 형상들이 그려져 있다.

소위 그리핀 또는 그리폰(griffon)이라 불리는 하이브리드 형상도 독수리의 머리와 사자의 몸통 그리고 새의 날개가 합성된 것인데, 이의 변형들을 알타이 일원의 파지리크 무덤 속에서 출토된 각종 조형 예술 가운데서 얼마든지 살필 수 있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문신이나 펠트 속의 장식 문양 등에서도 여러 가지 동물을 합성시킨 형상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몽골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살필 수 있는 사슴 돌(양식화된 사슴형상이 그려진 선돌) 등 거석기념물 그리고 그의 연장선상에서 변형된 동물 형상들도 새롭게 주목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귀면이라든가 용 혹은 상상 속의 도깨비 등이 그것이다.

이렇듯, 선사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하이브리드 형상은 지속적으로 제작되어 왔으며, 그 고형으로부터 파생된 변형들이 다양하게 제작되어 왔다. 그와 같은 하이브리드 형상 가운데는 동물 뿐만 아니라 사람도 그것을 구성하는 하나의 부분으로 채택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다시 말하자면, 합성동물에서 머리는 언제나 새부리를 하고 있고, 뿔은 사슴이며, 손은 곰의 앞발 등인데, 다리나 발은 대체적으로 사람처럼 그려놓았다. 물론 이러한 특징으로써 이 형상과 각 부분들에 특별한 상징 의미가 깃들어 있음도 추측할 수 있다.

대곡리 암각화 속에서는 그와 같은 하이브리드 형상의 변형으로 보이는 것이 그려져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주암면의 왼쪽 위에 그려진 사람 형상이다. 이 형상은 오른쪽으로 향한 모습인데, 두 손을 얼굴 앞으로 모아서 합장을 하는 듯 하고 또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있다. 특히 이 형상의 배꼽과 꼬리 부분이 각각 앞뒤로 돌기되어 있다. 바로 배꼽부분의 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 형상을 발가벗고 성기를 노출시킨 사람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밖에도 대곡리 암각화 속에는 암면의 중간에 그려진 소위 교미하는 멧돼지도 엄밀하게 분류한다면, 하이브리드 형상의 범주 속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 이유는 이 형상의 머리부분은 멧돼지의 요소를 명백히 띠고 있지만, 꼬리는 호랑이의 그것과 유사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형상 속에 두 가지의 속성이 동시에 살펴진다는 것이다.

이상의 예들을 통해서 살필 수 있었듯이, 하이브리드 형상은 지속적으로 그려져 왔다. 선사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왜 ‘하이브리드’의 매력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선사시대의 화가들은 이와 같은 하이브리드 형상을 지속적으로 그려왔을까?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