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불 이태화(一神佛 二太和)’
‘일신불 이태화(一神佛 二太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10.17 2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천강과 태화강, 두 강이 만나는 명촌 나루는 늦가을 햇살을 받아 온통 눈부신 은빛이었다. 전날 내린 비로 드문드문 질퍽거리는 둔치 바닥이 옥에 티로 보였지만 산책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분위기였다. 초청인사로서 연단에 오른 반백(半白)의 박맹우 광역시장이 둔치의 객석을 향해 기백 넘치는 어조로 인사말을 꺼냈다. 늘 그러듯이 원고가 없는 즉흥 스피치였다.

“시민 여러분, ‘일신불 이태화’란 말 아시지요?”

이해하는 데는 다소 설명이 필요했다.

“시간 나시는 분은 신불산에 올라가 보시고 시간 안 나시는 분은 태화강변을 걸어 보십시오.” 다름 아닌 ‘억새 예찬’이었다. ‘일신불 이태화(一神佛 二太和)’란 억새밭 산책을 권유하는 신조어였다.

시장의 말씀은 회고담으로 이어졌다.

“한 6,7년 됐을 겁니다. 처음에는 메밀도 심어보고 코스모스도 심어보았지만 영 신통치가 않아서 바꿔 본 것이 억새였습니다.”

“억새는 잡초입니다. 잡초처럼 얼마나 잘 자라던지…. 하지만 이제는 또 하나의 태화강 명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태화강 억새밭의 눈부신 절경을 맘껏 즐기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어 윤종오 북구청장이 마이크를 물려받았다.

“여기 동천강을 왜 개발 안하고 그대로 놔두느냐고 걱정하는 시민들도 계시던데, 여러분,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시민들이 불편해 하시지 않도록 편의시설 정도만 갖추는 선에서 말입니다.”

뒤이어 연단에 올라온 최병국 국회의원(한나라당 울산시당 위원장)은 억새 예찬에 고복수 선생이 부른 ‘짝사랑’의 노랫말을 인용했다.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이 노래 가사의 으악새는 바로 억새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나중의 일이지만, 참고삼아 인터넷을 뒤적여 보았더니 “1992년에 나온 ‘우리말 큰사전’에는 ‘으악새’가 억새의 사투리도 되고, 왜가리의 사투리도 된다고 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 이후의 국어사전에는 ‘으악새’의 뜻을 ‘억새의 사투리’라고 풀이했다고 했다.

아울러 평안도에서는 왜가리를 사투리로 ‘왁새’라고 부른다는 기록도 있었다. 한상기라는 분은 ‘여름철새인 왜가리가 가을이 되어 남쪽으로 떠나갈 것을 슬퍼해서 운다’고 보고 ‘으악새’는 억새의 사투리가 아니라 왜가리의 사투리라고 하는 분의 주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남구 갑’ 출신 최 의원이 ‘남구 을’ 김기현 국회의원과 박순환 시의회 의장, 김두겸 남구청장과 이상문 남구의회 의장을 대동하고 북구의 명촌 둔치를 찾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올해는 북구에 한정하지 않고 명촌교를 건너 태화강 남구 쪽 둔치까지 걸어갔다가 되돌아오는 코스를 잡았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오전, 북구와 남구를 오가는 5킬로미터 구간에서 펼쳐진 ‘제2회 태화강 억새밭 걷기대회’는 그렇게 시작됐다.

행사장에서 억새밭 사잇길로 접어들면 오른쪽으로 동천강과 태화강의 합수(合水)지점(=‘두물머리’)이 보인다. 인위(人爲)가 가미될 틈새란 손톱만큼도 내주지 않고 자연스레 만들어져 버드나무까지 자라게 도와주는 모래동산은 또 얼마나 멋진 볼거리인가!

바로 곁, 망아지마냥 앙증맞은 모래톱 위에서 사이좋게 햇볕을 나누는 하얗고 까만 새때들의 평화로움이 상추객(賞秋客)들의 서정을 자꾸만 자극했다.

명촌교 조명등을 의짓대 삼아 셔터를 누르고 있던 시청의 기록사진가 이백호씨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멀리 두물머리의 수중 모래톱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새들이 어떤 녀석들인가 하고. 단박에 나온 답은 갈매기와 가마우지였다. 바닥까지 환히 드러날 정도로 맑아진 태화강이 이젠 가마우지까지 불러들이는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함이 샘솟았다.

명촌교 언저리, 남구 쪽 강변에는 세월을 낚는 태공들의 수가 동천강 너머 중구 쪽 강변보다 좀 더 많아 보였다. 일부러 내려가 물었고 물 흐르듯이 답이 돌아왔다. “요샌 꼬시래기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숭어나 모치(숭어의 새끼)에다 고등어하고 준치까지 잡힌답니다. 중구 쪽 양반들은 대부분 고등어 낚시꾼들일 겁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올 무렵 깃발을 앞세우고 반환점을 돌아오는 걷기대회 참가자 일행의 머리 위로 눈이 시리도록 부신 10월의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태화강에 드리워진 태양의 다른 한 자락은 은백색으로 반사되면서 강태공(江太公)의 망막에도 투영되고 있었다.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