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의 방정식
다툼의 방정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9.26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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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동네 아줌마들이 싸움질하는 것 같던데.”

“어린애들 싸움이란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당적이 없는 A, B 두 시의원이 관전(?) 소감을 한마디씩 털어놨다. 지난 23일 오전, 2차 본회의장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이어진 여야 의원들의 릴레이식 설전을 지켜보고 난 직후의 언급이었다.

9월 임시회 기간 동안 ‘고유황유 허용 조례안’을 둘러싼 환경복지위원들의, 금속성 파열음까지 동반한 두 차례의 설전마저 지켜봤다면 논평은 더 신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린아이들이야 치고받고 싸움박질 하면서 큰다는 옛말이 있긴 하지만, 민감한 사안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여야의 대결이 개원 1년을 훌쩍 넘기고도 유아기 수준을 못 벗어났다면, 그저 가볍게 보아 넘길 일만은 아니다.

두 의원의 말을 듣고 있던 C 의원이 한마디 거들었다.

“얻어맞은 아이에게 울고불고 욕할 기회 정도는 줘야지, 그런 것도 못 봐 주겠다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겠다니. 그래서 싸움판이 자꾸 커지는 것 아닙니까?” 어른스럽지 못한 논쟁의 모양새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말이었다.

상위법의 개정으로 제정의 수순을 밟아야 했던 ‘주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안’ 역시 여야에게 설전의 빌미를 제공했다. D 야당 의원의 일방적 공세가 못마땅하던 E 여당 의원이 빈정거리듯 응수했다. 그는 ‘관급공사 입금체불 방지 조례안’ 통과를 사전 타협으로 관철시킨 다른 상임위원회 소속 F 야당 의원의 처신을 보란 듯이 떠올렸다. 양쪽 견해가 평행선을 달릴 경우 일부라도 양보하겠다는 마음가짐이 반론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점을 그는 애써 강조하고 싶어 했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라는 사고방식이 정치인에게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일은 매우 흔하다. 그 숱한 국회의 관례를 보더라도 쉽게 터득할 수 있다.

“나의 주장만이 옳고 정당하다”는 독선적 자세는 상대방의 격한 반발을 부르기 마련이다. 때론 고성과 몸싸움을 부르기도 한다. 상대방의 존재감을 지우고 자존심을 짓누르기 때문일 것이다. ‘상생’이라는 정치적 가치는 거저 굴러 오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역지사지’의 지혜를 지닐 때만이 실현시킬 수 있는 보람이다.

부부싸움을 예로 든다면, 해도 될 말과 해선 안 되는 말이 분명히 구분돼 있다. 처가 혹은 시댁 식구들을 낮잡아 보는 말을 아내에게 혹은 남편에게 꺼내 보라.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올 피 튀기는 반응은 굳이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들 싸움, 아줌마들 싸움은 여차하면 되풀이되기 십상이다. 그 바닥에는 짙은 불신과 고집스러운 선입견의 그림자가 깔려 있다. 건너지 못할 깊은 강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그 양반들, 결정권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어. 집행부 안이 곧바로 당론이야. 차라리 시장의 시정연설이나 듣고 말지.”

“웃기고 있네.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데 고수는 당신네들이야. 지금이 어느 땐데, 아직도 빨갱이 수법 그대로인가. ‘종북’ 빼면 시체 아니고 뭔가.”

제140회 임시회가 끝나던 날, 투쟁의 선봉장으로 통하는 F 야당 의원이 특유의 웃음으로 촌평을 시도했다. “우리 의회, 이만하면 제법 진화한 것 같지 않아요?”

임시회를 마감하는 본회의장에서, 야당 의원 뺨칠 정도로 줄줄이 발언권을 신청하던 여당 의원들을 빗대어 한 말 같았다. 그는 ‘진화’란 단어 대신 ‘진보’나 ‘발전’이란 말로 바꿔 표현해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정치의 진화라!

당적을 안 가진 A 의원이 그 말을 받았다.

“하긴. 우리 의회의 정치가 ‘진일보’한 것만은 사실이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야. 아직 진화가 설 된 거지, 싸움의 방정식이 뭔지도 모르고 있으니.”

A 의원은 ‘진보’란 낱말을 부여하길 주저했다. 상대방을 흠씬 두들겨 패야 직성이 풀리는 정치풍토인데 어찌 감히 ‘진보’란 낱말을 대입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였다.

백수의 제왕이라는 사자, 특히 그 수컷들은 싸울 때 일정한 룰을 지킨다. 그것은 목숨이 끊이지 않을 만큼 혼만 내고 마는 ‘절제의 규율’이다. 다툼의 방정식. 본보기가 될 만한 매뉴얼을 내놓으라 하면, 당장 동물농장의 그것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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