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가 물려준 문화적 토양에 현대의 교양·세련미 접목해 전통 빛낼 것”
“선조가 물려준 문화적 토양에 현대의 교양·세련미 접목해 전통 빛낼 것”
  • 이상문 기자
  • 승인 2011.09.2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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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유서깊은 선비·충효의 고장 자부심 느껴
古書번역·문화재발굴 등 문화변방 오명벗기 주력
문화원 역할 강화해 후대에 문화자산 물려주고파
“북구를 흔히 울산의 문화변방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북구는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고장이며 선비의 고장, 문향, 충효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왔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산업체 근로자들의 문화까지 더해져 저변이 더욱 확장됐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문화 자산을 더욱 세련되게 갈고 닦는데 노력하겠습니다.”

21일 제3대 북구문화원장으로 취임한 박종해(69) 신임 원장은 북구 송정동 출신이다. 고헌 박상진 의사의 7촌 조카뻘이며 지역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한 사람이다. 그의 북구 사랑은 곧 고향 사랑이며 울산 사랑이다.

박 원장은 북구 송정동, 농소, 강동 일원은 고려 개국공신 박윤웅 장군이 식읍으로 받은 땅이며 진장들의 넓은 농토와 해양자원이 풍부한 강동해안이 있어 울산 산물의 중심지였다고 밝혔다. 또 조선 숙종 때 문인이었던 괴천 박창우가 영천에서 울산으로 내려와 신답마을에 정착하고 문풍을 일으켰다. 그는 아들 박세도와 함께 구강서원을 건립했고 경주와 영천의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울산 문학의 층위를 두텁게 했다고 주장했다.

또 조선조에 울산 전체 대과급제자가 3명이 나왔는데 그 중 2명이 북구 사람이었다고 설명했다. 그 두 명이 바로 박상진 의사의 생부와 양부였다. 게다가 진사 출신 11명 중 북구 출신이 6명이 나왔고 문집을 낸 선비가 11명으로 울산 전체의 절반 이상이 될 정도로 북구는 과환(科宦)의 고장, 문한(文翰)의 고장이라는 것이다.

북구 효문동은 효자 송도 선생이 난 마을이다. 통천지효자(하늘에도 통하는 효자)로 일컬어지는 송도의 효행을 마을 이름으로 정했다. 임진왜란 때에는 제월당 이경연, 회암 박진남, 송호 유정 등이 의병을 일으켰다. 고헌 박상진 의사의 항일투쟁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북구는 충효의 고장이 될 자격이 있다.

“농소(農所)라는 마을 이름이 바로 농사짓기에 좋은 곳이라는 의미고, 달천 쇠부리가 있어 북구는 울산이 산업도시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박 원장은 울산의 산업적 기반이 북구에서 출발했고 현재 이 지역에 현대차를 위시한 협력업체가 즐비해 있어, 토박이뿐 아니라 전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살아가는 문화공동체로서의 모습을 띠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북구의 문화토양이 앞으로 울산의 문화자산을 풍요롭게 하고 더 나아가서 새로운 문화의 형태를 창출해낼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박 원장은 북구의 선조들이 물려준 문화적 토양에 현재의 산업경제문화를 잘 조화시켜 북구만의 특성화된 문화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지도 가지고 있다.

“미국은 불과 200년의 짧은 역사 속에서도 다양한 민족의 문화를 융합해 세계 문화강대국이 됐습니다. 북구도 현재 다양한 지역에서 정착한 주민들의 혼합 문화가 정착하고 있어 여기에 주민들의 교양과 세련미나 더한다면 어느 지역보다 문화적 분위기가 강한 지역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북구 주민들의 문화양식을 높이기 위해 문화원 차원의 다양한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선보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박 원장은 문화원의 기능강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지역에 흩어져 있는 유무형문화재에 대한 발굴 및 보존과 더불어 고서(古書)등의 번역을 통한 북구의 정신세계를 널리 알리고, 문화원의 문턱을 낮춰 서예와 전통화, 문학교실, 전통춤 등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교실을 적극 운영할 계획이다.

“과거 신라문화권이던 북구는 각종 문화재뿐 아니라 유무형의 문화자산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 만큼, 이러한 문화자산을 발굴하고 보존해, 다음세대에 계승할 수 있도록 문화원의 역할정립이 필요합니다.”

박 원장의 선친은 울산사람이지만 처음으로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 원장을 지냈을 정도로 학문과 덕망이 높았다. 이런 부친의 영향으로 박 원장은 평생을 교편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문학공부를 했고 지금까지 총 10권의 시집을 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울산문인협회장과 울산예총회장, 처용문화제 위원장 등을 지내며 ‘문화 불모지’ 울산의 문화발전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학업과 직업 때문에 외지로 나가 있으면서도 주민등록상의 주소지는 북구 송정동으로 둘 정도로 북구는 나의 정신의 뿌리입니다. 일흔이 넘어 이제 집에서 쉬면서 문학에 매진하려 했지만 아직도 나의 노력이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이 봉사를 해야겠지요.”

북구에 문화원장을 할 수 있는 덕망과 견문을 갖춘 사람이 많지만 굳이 자신을 원장으로 천거한 지역 문화인들에게 감사한 뜻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전임 이병우 원장에 대한 신뢰는 두터웠다.

“이 원장이 고생 많이 했습니다. 문화원사가 없어 네 번이나 이사를 했고 울산의 대표 축제 중 하나인 쇠부리축제를 재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요. 그의 노력이 닦아 놓은 문화원의 역량을 한층 높이는데 마지막 봉사의 의미를 두겠습니다.”

박 원장은 남구나 울주군 문화원의 왕성한 역할을 부러워하면서도 그들의 역량을 따르는 노력을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그래서 북구민에게 문화의 혜택을 골고루 누릴 수 있도록 마지막 정열을 쏟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글= 이상문·사진=최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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