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의회
가을 의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9.1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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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이면 제법 서늘한 기운이 침실을 기웃거린다. 지긋지긋하던 찜통더위도 고별의 문지방을 이제 막 넘어섰다. 기상캐스터들은 긴팔이 무난할 것이라는 소식을 참으로 오랜만에 전한다. 수족관 전어도 미식가들의 호주머니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한여름 비회기를 뒤로 한 지방의회는 가을걷이 채비로 분주하다. 열흘 지나면 제5대 1년 2개월을 채우는 울산시의회는 활기로 넘친다. 의원들의 걸음걸이에는 의젓함마저 배어있다. ‘성숙’을 향해 가는 두 번째 가을 의회, 제140회 임시회가 막을 올렸다.

지난 15일, 임시회 1차 본회의는 1시간 17분을 소모했다. 의장의 개회사 말고도 3건의 5분 자유발언과 1건의 시정질문, 야당 의원의 5분 자유발언에 대한 여당 의원의 신상발언과 야당 의원의 반박발언, 시정답변에 대한 야당 의원의 보충질문과 시장의 보충답변이 꼬리를 물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번 가을 의회는 얻은 것도 있었다. 고성과 막말이 자취를 감추면서 분위기가 몰라보게 달라진 것이다. 장기간의 단식농성도 불사했던 민주노동당 이은영 의원은 시장의 시정답변에 대한 보충질문에서 발언 수위를 낮추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 의원은 친환경 무상급식 예산의 지원을 요청하면서도 꼬박꼬박 경어를 사용했다.

“친환경 무상급식을 하지 않을 이유를 시장님께서는 10가지 정도 대셨습니다. 아마도 친환경 무상급식을 하지 않을 이유를 대기 시작하면 100가지도 더 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해야 될 이유에 대해서 저는 구구절절하게 시정질문을 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 변화가 있다면 ‘친환경 급식 부분에서 증액을 하겠다, 우수농산물에 대해서 급식을 하겠다’라는 답변이셨습니다.”

이 의원은 “답변을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라는 말로 보충질문을 마쳤다.

평소 ‘독설가’로 정평이 난 천병태 민주노동당 시의원단 대표도 이날만은 절제된 용어를 구사하려고 애썼다. 자신의 제안에 반론을 제기한 김종무 한나라당 시의원단 대표의 ‘신상발언’에 대한 ‘신상발언’에서 그런 흔적을 남겼다.

“김종무 의회운영위원장님의 의견에 동의하신 의원님도 계시리라 믿습니다. … (검찰이나 경찰의) 수사와 행정사무조사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사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에 앞서 천 의원은 5분 자유발언을 통해 ‘문수산 아파트 개발 특혜의혹 사건’의 행정처리 사항을 알아보기 위해 행정사무조사특위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었다.

발언의 수위가 낮춰지고 말씨가 부드러워진 것은 집행부의 수장이나 한나라당 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겹겹이 쌓인 내공 덕분이었을까, 피부에 와 닿은 계절의 변화 덕분이었을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의회 내에서는 여야 시의원단을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에 비유하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겉모양만 유순해 보일 뿐 속에는 비수를 품고 있을 거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무상복지 시리즈’를 비판한 한나라당 한동영 의원의 5분 자유발언이 그 본때를 보여 줬다. 미리 돌린 보도자료의 제목은 ‘통 큰 복지를 외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였다.

그는 “무상급식을 주장하던 곽노현 서울교육감이 저지른 사건은 진보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야권을 세차게 몰아붙였다. “그럼에도 지역 야권과 진보단체가 무상급식 공세를 다시 시작한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고복지에는 고부담이 따름을 알아야 할 것”이라는 경고나 “다음 세대에 부담을 주는 무상복지 광풍을 막아내고 경제능력에 걸맞은 복지정책을 순차적으로 수행함이 타당하다”고 한 주장은 직설적 독설의 전형이었다.

옛말에 ‘궁구물박(窮寇勿迫=피할 곳 없는 도적을 쫓지 말라/곤궁에 빠진 적을 모질게 핍박하지 말라)’이란 격언이 있다. ‘쥐도 도망갈 곳이 막히면 돌아서서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과 뜻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야 의원들이 이 말을 귀담아 새기면 어떨까.

가을은 서정의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이 되면 고 은이 시를 쓰고 김민기가 곡을 붙이고 최양숙이 노래한 ‘가을 편지’가 새삼 생각난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여당 의원이 야당 의원에게, 야당 의원이 여당 의원에게, 가을의 서정을 담은 편지 한 통이라도 보낸다면, 의회는 가을 단풍처럼 한층 더한 성숙함으로 물들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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