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지명(先進之明)’의 도시 대구·경주
‘선진지명(先進之明)’의 도시 대구·경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9.05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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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에 관한 한 경주와 대구는 울산보다 여러 발 앞서 가는 도시였다. 경주는 역사를 자산으로, 대구는 스포츠를 무기삼아, 세계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었다.

박순환 의장을 좌장으로 한 울산시의회 방문단 28명이 4년 만에 다시 열린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행사장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던 대구스타디움을 찾은 것은 지난 2일이었다. 두 도시 방문에는 김종무·천병태 여야 시의원단 대표와 언론계 인사도 합류했다.

울산시의회의 두 도시 방문은 친선우호의 성격이 짙었다. 몇 차례의 대사를 치르는 동안 세 도시는 더 이상 남남이 아니라는 유대감이 은연중에 생겨나고 있었다. ‘동남권 신공항 밀양 유치전’ 당시에는 대구시의회와 경북도의회가, 2011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개막을 앞둔 시점에는 경북도의회가 연대와 협조의 손길을 울산시의회에 내밀었던 것이다.

‘친선사절단’ 일행이 먼저 찾은 곳은 천년(千年)의 고도(古都) 경주에서 열리는 세계문화엑스포 행사장 근처의 그럴듯한 한식당이었다. 이상효 경북도의회 의장과 윤창욱 운영위원장이 몸소 나와 일행을 맞이했다. 서로는 선물로 덕담(德談)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경주가 지역구인 윤창욱 운영위원장은 울산의 김종무 운영위원장과 ‘절친’ 사이임을 은연중 과시했다. 울주군 출신 허 령 행정자치위원장은 선거구가 경주에 맞닿아 있다는 말로 화답했다.

윤 위원장은 일본의 1인당 소득을 뛰어넘는 울산의 경제수준을 은근히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열등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의 말 뒤에는 천년 역사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이 짙게 배어 있었다. 경주사람들은 그들의 역사를 앞세워 세계화(世界化)의 도전장을 던지지 않았던가.

세계화를 겨냥해 추진했던 2010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의 노하우도 실은 경주 엑스포에서 한 수 배워 갔다는 귀띔도 나왔다. 경주 엑스포를 두 해씩 걸러 2년마다 외국에서도 개최하는 경주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세계화’에 관한 한 ‘큰형’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울산의 경제력과 경주의 역사 콘텐츠가 하나로 합친다면?” 농담이 두 도시의 통합 문제로 이어지자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통합도시의 이름으로 ‘경주울산시’가 어떨까요?”

개막 21일째에 접어든 2011 경주 세계문화엑스포는 4년 만의 국내 귀환이라는 점 말고도 또 다른 감흥을 일행에게 선사했다. ‘주제전시관’에서 선보인 ‘천년의 이야기’는 경주의 ‘변방’이었던 울산사람들에게 ‘탈(脫) 변방’의 의지를 새삼 일깨워주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대절한 관광버스는 그 다음 행선지인 경북의 심장 대구로 향했다. 섬유산업의 침체라는 쓰라린 기억을 안고 있으면서도 자긍심 하나는 하늘을 찌른다는 달구벌 사람들의 고고(孤高)함이 짙푸른 가로변마다 묻어나는 듯했다. 빛바랜 도시의 이미지를 되살리는 일에 관(官)과 민(民)이 합심하는 모습은 또 하나의 신선한 감동이었다.

2011 세계육상선수권 대회가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던 대회 7일째의 대구스타디움은 세계의 점령군인양 으스대며 울산 손님들을 맞이했다. 남자 200m 달리기의 뉴스메이커 우사인 볼트(자메이카), 여자 창던지기의 마리아 아바쿠모바(러시아)의 쇼맨 제스처가 없었다 해도, 3만을 훌쩍 넘어선 관객의 수는 대구 재기(再起)의 탄탄한 구름판이 될 것이란 기대를 새삼 걸게 했다.

그날의 경기일정을 담은 소책자 ‘데일리 프로그램’을 비롯해 관전(觀戰) 포인트를 안내한 한 장짜리 ‘오늘의 경기정보’에 이르기까지, 대구의 그 숱한 유·무형 자산들은 하나의 스타디움으로 모여들어 ‘세계 속의 대구’를 향해 초고속으로 줄달음치는 느낌이었다.

대구스타디움을 빠져나오는 순간 하늘색 좌석버스 옆구리의 구호가 대구광역시 로고와 함께 시야에 잡혔다. “새로운 출발, 새로운 대구!” 그랬다. 그들은 새로운 도약을 위해 마음을 다잡고 있었던 것이다.

창의력 있는 시민의 제안 덕분이었든 선 굵은 단체장의 구상 덕분이었든, 대구와 경주는 도시브랜드의 세계 속 세일즈에 관한 한 울산을 한참 앞지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대구와 경주는 선진지명(先進之明)의 도시였고, 울산시의회의 양대 도시 방문은 ‘선진지 견학’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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