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결단
오세훈의 결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8.29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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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정치사에 굵은 획을 그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정치도박이 태풍 ‘사라’를 훨씬 능가하는 메가톤급 후폭풍을 몰고 오고 있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주민투표를 전후해서 그가 소속된 집권여당 일각에서마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만 보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저런 뒷공론 가운데 눈길을 끄는 언급이 하나 있었다. 주민투표 직전 “시장직을 걸겠다”는 오 시장에게 ‘바보’라는 질책도 서슴지 않았던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쓴 소리가 그런 예에 속한다. “조직보다 개인의 명예를 더 중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독불장군’의 누명을 쓰고 ‘조직의 쓴 맛’을 한참 곱씹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보는 이에 따라 그의 결단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사나이 대장부답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개인의 의사가 왜 조직의 집단의사에 늘 묻혀야만 하는가”하는 반론에는 유의미(有意味)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조직집단의 부정적 측면을 충분히 헤아린 뒤끝의 결론이란 해석이 있다.

‘1인 정치’가 성립되지 않는 한 정치(政治)는 ‘결사(結社)’를 전제로 한다. ‘조직’이 있어야 비로소 정치가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그런 때문인지 정치집단을 조직폭력단 즉 ‘조폭(組暴)’에 비유하는 이들이 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조폭 성향’을 갖고 있지 않은 정당을 여러분은 본 일이 있는가.

국회의원이고 지방의원이고 간에 당에서 정한 규율, 곧 당명(黨命)에 어긋나는 정치적 행위를 한다면 그는 곧바로 구설수에 오르고 해당(害黨) 행위자로 낙인이 찍힌다. 그 정도가 심하다 싶으면 ‘마녀사냥’에 의해 조직의 쓴 맛을 톡톡히 보아야만 한다. 개인의 가치관은 싫더라도 집단의 그것에 맞추어야만 한다. 그 편린은, 시야를 좁혀서, 울산시의회에서도 쉽사리 목격할 수 있다. 한나라당 소속도 민주노동당 소속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노동당 의원이 주축이 된 ‘좋은 예산 연구회’에서 어느 시점, 한나라당 의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일이 좋은 사례로 손꼽힌다. 예외가 있다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결단이 새삼 돋보이는 것은, 그가 지엄하기 짝이 없는 조직의 명령을 한사코 거부했기 때문이다. 무상급식 ‘포퓰리즘’이라고 지목한 그의 견해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그는 ‘주민투표’에 대한 초심을 잃지 않았고, ‘남아일언(男兒一言)’을 ‘중천금(重千金)’으로 여기는 본때를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의 하나라도, 울산시의회의 제1당인 한나라당 소속 의원 누군가가 당명을 거역한다면, 그의 앞날은 어찌될 것인지. 불문가지(不問可知) 차기 공천에 대한 기대는 당장 접어야만 할 것이라는 답이 나온다. 그런 물음을 제2당인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들에게 대입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진단하는 시각도 있다.

‘정치적 조폭문화’는 때론 집단 패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제5대 의회 개원 시기에 전국적 뉴스메이커가 됐던 본회의장의 살기(殺氣) 어린 활극을 여러분은 벌써 잊으셨는가. 이성(理性)은 실종되고 감성(感性)이 판을 치던 그때의 그 생생하던 장면들을 말이다. 한데도 아직 의사당 건물 4층 본회의장에 온기(溫氣)보다 냉기(冷氣)가 더 득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조폭문화에 길들여진 오늘의 정치인들에게 오세훈의 결단은, 어찌 보면, 청량제 같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의 정치도박에 대한 거시적 평가는 “후세 정치사가(政治史家)들의 몫”이라고 치부할지 모른다. 단기적으론 “차차기(次次期) 대권을 노린 정치적 꼼수”라는 등의 갖가지 해석이 난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추상같은 조직의 호령에 등을 돌렸다는 미시적 의미에서 그는 “참으로 용기 있는 결단의 정치인”이라고 칭송하고 싶다.

차제에, 무조건적 상명하복(上命下腹) 체제의 정당문화가 과감한 탈피(脫皮)의 길을 걷기를 권유한다. 더불어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이란 시쳇말도 말끔히 사라지기를 고대한다. ‘참된 자유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해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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