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國民)을 뭐로 아는가?
국민(國民)을 뭐로 아는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8.0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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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2000. 6), 16대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되면서 국민은 호기심이 생겼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될 기회가 되어서 흥미를 끌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 사람들은 당연히 한 단계 높은 그 무엇이 있으려니 기대하는 것도 있었다. 처음에는 재미도 있었다. 국회의원의 질책성 질문에 당황하는, 숨기고 태연하려는 모습이 가소(可笑)로웠다.

고관대작이 될 사람도 별 거 아니라는 만민평등이 확인되면서 ‘뭐, 저런 사람을 높은 자리에 앉혀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이냐?’의 보통 사람들의 호통이 대통령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점이 인사청문회의 취지,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牽制)할 수 있는 하나의 장치’로서의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제와 그제의 인사청문회는 이 견제가 당구치기의 겐세이(けん-せい) 수준에 머물게 되는 것 같아서 아쉽고, 크게는 분개하는 것이다.

당구의 겐세이는 상대방이 큐를 잡고 치려고 할 때 말을 걸거나 기침을 하며 소리를 내어 훼방 놓는 수준이다. 분개하는 것은 훼방을 놓아도 이명박 대통령이 수직적 인사행정, ‘해볼 테면 해보아라.’는 식의 국정운영을 하고 있어서 그렇다.

‘국민(國民)’은 집합명사이다. 영어가 들어오면서 단수(單數)와 복수(複數)라는 개념구별이 ‘국민들’로 표기하게 하였는데 잘 못 쓰고 있다. 하여간 국민은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물론 부모가 주민등록증이 있으면 아직 어려서 받지 못했어도 국민으로 인정한다. 이 낱말에서 민(백성 民)에 관한 논어의 계씨(季氏) 옹야(雍也)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어서 국민을 분하게 하고 있다.

‘태어나면서 저절로 아는 사람은 으뜸이요, 배워서 아는 사람이 다음이고, 막혀도 애써 배우는 사람은 그 다음이다. 그러나 막혔는데도 배우지 아니 하니 민(民)은 그렇게 되어 하층(下層)이 되었다.… 중간 이상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높은 것을 말해줄 수 있으나 그 이하의 사람에게는 높은 것을 말해줄 수 없다.’

공자의 이 말은 약 2천500년 전의 시대상황을 반영한 것이어서 곱씹어볼 생각은 없으나 엊그제의 인사청문회에서의 질문하는 국회의원이나 특히 공직자 후보의 답변에서 ‘국민을 뭐로 보기에 저러는가?’의 불쾌감이 솟구쳤다.

첫째는 국회의원의 질문에서 인사청문회의 목적에 맞춰 ‘고위 공직자로서의 자질(資質)’에 맞춰 하다 못 해 관상(觀相)이라도 볼 일이지 ‘호남푸대접’을 들먹이는 잘 못을 저지르고 있다. 국민을 뭐로 보기에 ‘공직자 자질’과 ‘출신지역’을 혼동하는가?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이 모두 경북, 포항, 고려대, 상고(商高)졸업생이면 어떻다는 것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정직하게 실력으로 일을 잘하면 되는 것이다.

둘째는 불법과 편법을 저지른 사항이 사실이라면 인사청문회가 끝나고, 그 고위직에 임명되지 않아도 법의 범위에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을 명확히 했어야 한다. 즉, 모든 국민이 ‘국가가 범법행위를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는 사례를 보여주어야 했다.

셋째는 후보자의 문제가 되는 부분을 여당으로서 반박하는 간접적 지원성 질문은 정말로 국민을 뭐로 보기에 저러는가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런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지역구민들의 수준이 민(民)에 그치는 것이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듯이 언론사 논객들로부터 질문하는 방식에 관해 교육을 받아야 한다.

후보자의 답변이야말로 국민을 뭐로 보기에 불성실한 답변, 어떻게 해서든지 표정관리 잘하여 이 국면을 넘기자는 태도를 보였는가? 답변이 옆길로 빠질 때 잡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예, 아니오.’의 질문에 ‘신중히 하겠다.’는 답변이다. 아직 우리의 국어교육이 부족하여 생기는 일이므로 다음부터는 청문회에 ‘회의통역사’를 두어 바로 잡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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