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로 가는 대절버스
외고로 가는 대절버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8.08 2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주의 끝자락인 지난 5일 오전 울산시의회 의사당 3층. 비회기 일일당직사령인 권오영 교육위원장의 집무실 전화통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이날 조간신문 보도에 자극받아 비상소집령을 내린 것. 보도는 울산외국어고등학교의 옹벽이 최근의 집중호우로 또다시 무너져 내렸다는 소식을 담았다.

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교육위원 5명 가운데 몇 명이나 소집에 응할지는 미지수였다. 회의가 없는 여름철 휴회기간이었기 때문이다. 명을 받은 바로 옆 교육전문위원실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울산외고 교장실도 현황파악의 대상이었다.

문곤섭 교장은 공교롭게도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이날부터 연가(年暇)에 들어갔다는 전언이 날아들었다. 문 교장이 5일부터 나흘 동안의 연가를 정식 신청했다는 것은 이날 오후 교육위원들이 학교에 도착한 이후 서류로 확인된 사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권 위원장에게는 ‘연가’가 변명거리로 들렸다.

오후 1시 30분, 울산시청 소속 대절버스가 의사당 앞에서 교육위원들을 맞이했다. 비상소집인데도 출석률은 예상 외로 높았다. 외지로 떠날 참이던 김정태, 배냇골 연수 도중 빠져나온 정찬모, 볼일이 있어 의원실을 찾았던 강혜순 의원의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북구에 거주하는 이은영 부위원장은 도중에 합류하기로 했다.

권오영 위원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수고하신다고 격려해주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있나. 전쟁이 벌어졌는데 소대장이 자리를 비우다니. 학교가 무너졌는데 연가가 어디 있나.”

‘울산의 전설’ 최형우 전 장관의 이야기를 그는 비유삼아 떠올렸다. 말씀인즉, 최 전 장관이 야당 국회의원이던 시절, 면장 한 분을 면담하려 했다가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는 실화였다. “이런 생각에 치가 떨렸겠지요. ‘아무리 힘없는 국회의원이지만, 도대체 이런 법이 어디 있나.’” 최 의원의 분노로 그 면장은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후일담이 결론이었다.

일행 중 한 교육위원이 위원장의 말씀을 거들었다. “하필 오늘 연가를 내다니. (우리가 오는 줄) 알고 일부러 그랬나?”

농담 좋아하는 권 위원장이 한 술을 더 떴다. “(학교에 가면) 출장명령서 잉크 한 번 확인해 봅시다.” 위원장의 조크를 사실인 줄로 오인한 이명옥 교육전문위원이 다급하게 말렸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 화제는 울산외고가 자리 잡은 ‘터’ 이야기로 머리를 돌렸다. “물구덩이에 집 짓는 법이 어디 있나.” 하긴 북구 중산동 산 145번지 일대는 예부터 산중턱인데도 벼농사가 잘 될 정도로 물이 풍부했고, 지금도 그런 편이다. 지하에도 수맥(水脈)이 여러 갈래로 뻗쳐 있어 학교와 같은 공공건물이 들어설 자리는 아니라는 지적 또한 적지 않았다.

민간의학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강혜순 의원이 자신의 견해를 선보였다. “사무실도 물(수맥)을 피해서 짓는다고 하잖아요.” 기숙사 생활을 싫어도 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 큰 걱정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지하 수맥이 신체의 질병과 무관하지 않다는 학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풍수지리설은 과학”이란 말도 있다.

정찬모 의원은 다른 시각에서 터 이야기를 꺼냈다. “외국어고등학교 이전에 울산 국립대학 유치단에도 땅을 희사하겠다는 제의가 있었지만 유치단에서 거절했다고 하지요. 실사 결과 토목공사비가 과다하다는 이유였을 겁니다.”

교육현안 해결에 느닷없이 교육논리가 아닌 정치논리가 개입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좀 더 세세한 배경설명이 뒤따랐다.

울산외고의 입지에 대한 논란은 울주군 온양읍 삼평리와 북구 중산동 두 곳을 놓고 벌어졌다. 처음엔 조건 면에서 울주군 쪽이 더 유리하다는 진단이 우세했지만 나중에는 기울기가 북구 쪽으로 기울었다. 왜였을까. 처음엔 땅값 평가에서도 울주군 쪽이 유리한 것으로 나왔다가 나중에는 무게추가 북구 쪽으로 기울었다. 왜였을까.

울산외고를 향하던 울산시청 대절버스는 어느새 가파른 학교 진입로를 숨 가쁘게 기어오르고 있었다. 흥미진진한 부연설명을 다 들을 짬도 주지 않은 채.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