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자리
아버지의 자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8.04 2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성애(父性愛)에 대한 대화가 오갈 때면 종종 큰가시고기가 그 예로 등장한다. 큰가시고기 수컷은 지구상의 어떤 생물보다도 부성애가 강한 물고기이기 때문이다.

큰가시고기는 봄이 되면 암수가 무리지어 하천으로 올라온다. 바로 산란을 위해서이다. 수컷은 물풀이 무성한 곳을 찾아 둥지부터 짓는데, 둥지가 완성되고 나면 암컷을 정중히 맞아들인다. 그러나 알을 낳자마자 어미는 미련 없이 둥지를 떠나 버린다. 자식과 남편을 버린 비정한 어미인 셈이다. 그 때부터 아비의 눈물겨운 희생이 시작된다.

수컷은 알의 부화에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느라 먹지도 않고 앞지느러미로 쉼 없이 부채질을 한다. 그러나 마지막 한 마리까지 새끼들을 부화시킨 수컷의 주둥이는 이미 다 헐고 지느러미는 온통 해어져 그 형태조차 알아 볼 수 없다. 꼬리는 그 처절한 사랑의 수고로 인해 너덜너덜해지고 푸르고 아름답던 비늘은 모두 떨어져 나간다. 새끼들을 위한 지극한 사랑을 베푼 뒤 모든 것을 잃고 마침내 부화한 새끼들이 모두 떠나간 둥지 앞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며칠 뒤 둥지를 떠났던 새끼들이 자신들을 위해 희생한 아버지의 살을 파먹기 위해 아버지의 몸 주위로 모여든다. 1년이라는 짧은 수명을 다하고, 온 몸으로 생명의 탄생을 돕다가 끝내는 자기 몸까지 새끼들의 먹이로 바치며 희생의 절차(?)를 마감한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단지 한 물고기의 본능적 생활상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사랑하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헌신과 희생을 감내하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의 모습이 큰가시고기 수컷의 일생과 너무 닮아 있다는 느낌은 쉽게 떨칠 수가 없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타고난 숙명인 양, 삶의 무게와 외로움을 인내와 침묵 속에 가두면서도 때가 되면 제 살을 뜯어내 새끼에게 주는 가시고기의 부성애를 발현(發現)한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많은 사랑을 주고받지만 대부분의 사랑은 이기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랑이다. 그러나 가족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는 아버지의 참사랑이야말로 그 어떤 사랑에 견줄 수가 있을까.

김현승 시인은 이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의 모습을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절절한 시로 그려내고 있다.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바깥은 요란해도/ 아버지는 어린 것들에게는 울타리가 된다/ 양심을 지키라고 낮은 음성으로 가르친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다/ 가장 화려한 사람들은/ 그 화려함으로 외로움을 배우게 된다’

이처럼 우리들의 아버지는 항상 바쁘고, 굳세고, 바람 같고, 눈물을 감추어야 하는 존재였다. 아버지의 존재 이유는 그저 아버지란 사실 하나로 족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언제부터인지 아버지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어깨 위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는 갈수록 버거워졌고, 가족들과의 대화 결핍으로 소외감을 호소하는 아버지가 늘기 시작했다. 장기간 이어진 경기 불황은 우리 아버지들의 일자리마저 서둘러 앗아갔으므로 그 위상은 한없이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가족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 자녀와의 의사소통이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긴밀하며, 가족 관계가 어머니와 자녀 중심으로 이루어지므로 퇴직 이후 아버지의 가정 내 소외현상이 매우 우려된다고 나타났다.

아버지는 있으나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가정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아버지의 부재(不在) 현상이 확산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가정의 균열은 곧 사회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사랑을 베푸는 ‘아버지의 자리’를 의연히 지킬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김부조 시인·동서문화사편집부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