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택의 조건
간택의 조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8.01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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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이면 목이 좋아 ‘명당자리’로 손꼽히는 남구 신정1동 D빌딩의 앞면을 장식한 선거현수막 주인이 새로 바뀌었다.

10·26 보궐선거를 앞두고 남구 제1선거구(신정1,2,3,5동)에 재도전한 무소속 A 예비후보(전 남구의회 의장)가 명당자리를 차지한 것.

신정시장 입구 사거리라는 양호한 입지조건에다 S은행 지점까지 들어서 있는 바람에 사람과 차량의 통행이 잦은 값나가는 요지이지만, 지난해 6·2지방선거 때만 해도 A씨는 감히 넘볼 엄두도조차 내지 못했었다. 더 강력한 실력자가 선점(先占)의 효과를 한껏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러해서였을까. 꿈에도 그리던 이 건물의 4층 한쪽 구석에서나마 선거사무소 간판을 보란 듯이 내걸 수 있게 된 A씨는 이 행운의 소식을 누군가라도 붙잡고 전하고 싶은 강력한 욕구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난달 30일 오후, 신정시장 입구에서 열심히 선거명함을 돌리던 A씨가 필자를 보자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평소 말수가 적은 듯싶던 그였지만 이 순간만은 태도가 달라 보였다. 감격이 북받쳤던지 그는, 사무소를 구하게 된 경위하며 저간의 사정들을 비교적 소상히 전하려고 애썼다.”이 아무개, 윤 아무개, 서 아무개… 이런 분들도 모두 등을 돌렸답니다.” 공천권을 쥔 실력자에 대한 공통분모적인 서운함을 그는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숨김없이 털어놓기 시작했다. 선거현수막을 내다걸고 선거사무소도 빌릴 수 있게 된 건물의 주인도 그 중 한 사람이라고 했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분, 선거대책본부장도 맡아 주시기로 했지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선거현수막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나란히 찍은 사진도 곁들여져 놓았다. 차제에 ‘정치적 보스’도 바꾸기로 작심했다는, 강력한 항의의 표시였다. ‘친이(親李)’에서 ‘친박(親朴)’으로 명패를 바꾼 정치지망생이 어디 그뿐이던가. 사실 최근 들어, 방망이로 힘껏 내리치면 튀어 오르는 게임기의 두더지처럼 고개를 내민 ‘친박OO’이니 ‘△△포럼’이니 하는 단체들도 따지고 보면 ‘공천 탈락의 한’을 풀어 보겠노라는 세찬 몸부림의 흔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혹자는 이들을 가리켜 ‘철새정치인’ 운운할지도 모르지만 당사자들은 단연코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으려 할 것이다. 정치적 생사의 여탈(與奪) 권한을 거머쥔 정치적 기득권층이 때가 묻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항변을 늘어놓을 만도 할 것이다.

찬찬히 지켜보면, ‘공천권’의 괴력을 과시하고 그 뒷맛을 즐기는 행위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여야의 구분이 없겠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울산의 야권 가운데는 민주당이 특히 심하고 민주노동당 또한 그에 버금간다는 지적이 있다. 민주노동당 지방의원들 사이에 주류(主流)-비주류(非主流) 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공천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당 국회의원 몇 분에게 우문(愚問)을 던져 본 적이 있다. ‘공천의 기준’ 즉 ‘간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하고…. 돌아오는 답변은 으레 ‘모범답안’들이다. ‘당에 대한 기여도’와 ‘당선가능성’이 그 앞자리를 차지한다. 이들 가운데서도 특히 ‘당에 대한 기여도’는 해석에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당(黨)’의 자리에 ‘공천의 칼자루를 쥔 분’을 대입시켜도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당 하는 분들 중에는 공천이 잘 되고 잘못 되고를 야당이나 무소속 후보들의 의석 차지와 연결 짓는 경향이 더러 있다. 이를테면, 지난 6·2지방선거 결과 나타난 울주군의회의 의석분포가 그 좋은 본보기다. 국민참여당에 1석, 민주노동당에 1석, 무소속에 1석을 빼앗겼으니 공천이 잘못 된 것 아니냐는 식의 논리다.

이 때 당선된 무소속이 여권의 공천경쟁에서 탈락한 정객이라면, 아니면 공천탈락으로 입후보 기회조차 얻지 못한 정객이라면, 공천권자에 대한 반감은 하늘을 찌를 수도 있다. “내년 총선 때 두고 보자”고 날을 세우는 이가 있다면, 대부분 그런 배경에서 연유한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란 명언은 정치판에서도 유효하지 싶다. ‘공천’도 ‘인사’의 한 유형이기 때문이다. 잘 된 공천은 인간관계를 기름지게 하고, 사회와 나라를 바람직한 쪽으로 변화시키는 신선한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반대는 부연설명을 따로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공천이 무엇이기에, 정치의 계절은 숱한 사람들을 저토록 메마르게 만드는 것인가. 마치 중국대륙의 황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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