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공간
사람의 공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7.2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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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청 구관과 신관(본관) 사이에 자리 잡은 건물을 가리켜 ‘의사당’이라고도 부른다. 울산시민들의 대의기관인 울산광역시의회가 6층 건물의 5개 층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데 이 건물에 언제부터인가 ‘쌀쌀맞은 공간’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 시점은 짐작컨대 건물 2층, 민원인들의 대기(待機) 공간이 사라진 이후의 일이다. 3개월 남짓 됐을까.

개선 즉 철거 조치 이전까지만 해도 의사당 2층의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었다. 드나드는 사람들의 발길과 열기와 시끌벅적한 대화로 재래 장터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온기와 생기가 넘쳐났다. 안락의자에다 고화질의 대형 텔레비전까지 갖춰 놓았으니 ‘단골손님’들에게는 둘도 없는 안방이었다.

그러던 공간이 석 달 전쯤부터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옹기를 전시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만 것이다.

티끌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깔끔한 마룻바닥, 그 바닥과 전시대에 가지런히 진열된 옹기 제품들, 그리고 크고 작은 액자 셋과 살아있는 소나무 모양새의 조목(造木) 일곱 점이 분위기를 싹 바꿔 놓았다.

전시 공간이라지만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눈을 크게 치뜨고 샅샅이 훑어봐도 그렇다. 액자 속 정물화 같은 무언(無言)의 공간. ‘쌀쌀맞은 공간’이란 별명도 그런 연유에서이지 싶다.

민원 공간이 전시 공간으로 둔갑해 버린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회사무처의 시각에서 보면, 이른바 ‘단골손님’들이 눈엣가시였다. 사무처는 ‘일부 보험설계사’들을 지목했다. 갈 곳이 마땅찮은 소수의 노인네(어르신)들도 그 속에 포함됐다.

정작 의회에 볼일이 있어서 찾아온 민원인들의 앉을 자리가 바로 그분들 때문에 점령(?)당하기 일쑤였으니 속이 상할 만도 했을 것이다.

의정 홍보용 텔레비전은 그분들의 입맛에 따라 채널을 달리하고, 생각지도 못한 ‘오물’ 치우기가 새로운 골칫거리로 등장했으니, 어찌 분개할 일이 아니었겠는가.

집행부는 또 다른 시각에서 접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의사당의 가용면적이 행정안전부가 예시한 테두리(가이드라인)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원칙론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민원의 공간이 전시의 공간으로 뒤바뀌고, 1층의 의회자료실이 집행부의 행정자료실로 흡수되고, 2층 한 구석의 ‘여성의원 휴게실’이 ‘모유 수유실’로 둔갑한 것도 다 그런 배경에서라는 해명이 있다. “100평 남짓한 초과 면적을 그대로 두면 호화청사 소리를 듣는다”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그 결과 2층 전시 공간은 침묵이 흐르는 옹기마을로 변했다. 의회자료실은 흡수통합에 따른 철거작업이 한창이고, 모유 수유실의 문이 열리는 일은 매우 드물다. 숨을 쉰다는 옹기들은 인위(人爲)의 그늘에 가려 도리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살아 숨 쉬는 공간이 아니라 숨 막히는 공간으로 돌변해 버린 것이다.

눈엣가시 어르신들은 주로 시청 후문(서문) 근처의 무료급식소인 ‘밝은 세상’(옛 정토사 공양원)을 거의 매일같이 이용하는 분들이다. 2층 민원인 대기 공간이 사라진 후 이분들은 대부분 어디로 갔을까? 몇 달을 두고 지켜본 결과, 이분들은 의사당 1층 의회자료실 옆 한구석에 놓인 의자들을 새로운 대기 장소로 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점식 식사 전과 후 모두 그랬다. 잠시라도 등 편하게 쉴 곳이 이분들에겐 필요했지만 사람들은 그런 사정에 눈길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물리적 해석에만 충실한 행정편의적 발상이 그 주범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그래서 나오는 것이겠죠.” 한 여성 의원이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개인적으로 사정도 해봤지만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는 것.

기왕지사, ‘위장된 겉치레’가 허용된다면 그 위장술을 보람된 일에 재활용하면 어떨까. 2층의 옹기 전시 공간을 생물의 숨소리가 들리고 체온이 느껴지고 생기가 되살아나는 ‘사람의 공간’으로 다시 꾸미면 어떨까.

그 하나의 대안으로 ‘상설 전시 공간’의 설치를 권유해 본다. 물론 ‘호화청사’ 소리를 안 듣게 관장의 주체는 ‘울산광역시의회’가 아니라 ‘울산광역시’로 한다는 조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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