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달인’
‘선거의 달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7.18 20: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거일 90일전’에 해당하는 7월 15일 오전 9시, 예비후보등록 서류를 책임진 이종식 남구선거관리위원회 관리계장이 세로로 길쭉한 탁자 앞에 앉았다. 그의 왼쪽으로는 박용걸 한나라당 예비후보와 그 참모진 3명이 나란히 자리를 차지했다. 남구 제1선거구의 10·26 보궐선거 예비후보등록이 바야흐로 막을 올린 것이다.

이 계장이 전과기록 증명에 관한 제출서, 정규학력 증명에 관한 제출서 등 9종이나 되는 예비후보등록 서류와 사진을 꼼꼼히 살피는 사이 두 번째 예비후보가 얼굴을 내밀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 여당의 공천을 받지 못해 같은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안성일 전 남구의회 의장이었다.

안 후보가 박 후보 일행 중 한 명에게 시큰둥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여기 뭐 하러 왔는데?” 질문을 받은 사람은 김영우 전 남구의회 의원이었다.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김 전 의원이 말을 받았다. “중학 동기 자네 보러 왔지.” 껄끄러운 장면에서 벗어나기 위한 즉흥 제스처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박 후보와 안 후보, 김 전 의원은 모두 1957년생 갑장이었고, 김 전 의원은 두 후보와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 동기로 맞물려 있다는 것이었다. 두 후보는 다시 사무실 한 구석의 소파 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김 전의원의 즉석 제안에 따라 서로 흠집 내는 일 없이 페어플레이를 하자고 다짐했다.

김영우 전 의원의 고등학교 선배 된다는 1952년생 이동해 씨가 선관위 사무실에 세 번째로, 그것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들어섰다. 오전 9시 30분이 채 안 된 시각이었다.

두 후보를 본 순간 몇 마디 직격탄이라도 날려야 속이 시원할 것 같은지 발언 욕구가 강렬하게 이는 모양이었다. 드디어 거침없는 ‘말씀’이 폭탄이 되어 터져 나왔다. “골병이 들어도 말 좀 해야겠어. 선거를 있게 한 정당이나 본인은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해.” 그러면서 도전장을 던졌다. “돈 있는 양반들, 내 돈 좀 쓰게 만들고 말겠어.”

이씨도 앞선 두 후보와 다름없이 선관위 이 계장의 왼쪽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서류 정리를 하고 있는 이 계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선거를 많이 해 보셔서 잘 하시겠네요.” 가만히 지켜보던 이씨는 아니나 다를까 싸전에서 조그만 돌조각이라도 발견해 낸 듯 곧장 훈수를 하나 던졌다. 이씨의 출마 전력을 잘 알고 있는 이 계장이 큼직한 웃음으로 말을 받았다. “역시 선거의 달인이십니다.” 이씨도 따라 웃었다. “허허, 선거의 달인? 하긴 맞는 말이지.”

선관위 간부에게 한 수 가르친(?) 이동해 후보의 지론은 이랬다. “선거는 여러 번 해 봐서 잘 아는데 (선관위에서는) 획 하나 틀려도 안 받아 주더라니까. 알아도 사전에 물어보고 확인해 보는 게 요령이야.”

이야기가 그의 출마경력 쪽으로 옮겨 갔다. 이 후보가 스스럼없이 답했다. “이번이 열 번째지. 집도 (선거구 쪽으로) 다 옮겨 놨지.”

이·동·해 씨. 그는 어찌 보면 숙명적으로 정치적 역마살이 낀 인물이다. 자신도 그 사실을 시인한다. 남들이야 무슨 말로 비난해도 선거구가 났다 하면 그곳으로 달려간다. ‘진료 대상’이라고 비아냥거려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실 그는 작년 6·2 지방선거 때는 ‘남구 라’ 선거구에서 기초의원 직에 도전했다. 그러다가 8개월 남짓 지난 올해 4·27 재선거에서는 ‘중구 4’ 선거구에서 광역의원 직에 도전했다. 원래 수십 년 지녔던 당적은 ‘민주당’이지만 시당이 인정해 주지 않으니 ‘무소속’ 출마도 불사할 수밖에 없다. 그의 유일한 후원자는 기자회견에도 같이 온 적이 있는 그의 부인이다.

“집사람요? 물론 (출마에) 대찬성이지.” 어느 고급 백화점에 근무한다는 그의 부인은 주변에서 ‘천사표’로 통한다. 9번 출마해서 모조리 낙선한 이 후보가 이번 열 번째 도전에서는 참고 기다린 부인에게 금배지를 선사하는 행운을 마침내 거머쥘 수 있을 것인가? 아무도 수긍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선거의 달인’ 그만은 그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두고 보이소, 내가 기네스 기록에만 만족할 성싶소?”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