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꼴찌의 이야기
어느 꼴찌의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7.04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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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직장에서 아내가 보내 준 아주 기쁜 문자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아들 녀석이 인턴사원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대학 측에 부모의 예금통장 사본을 제출했다는 소식이었다. 그 회사는 중견 광고대행업체로 8주의 현장교육을 마치고 나면, 해당 학생을 곧바로 정식 사원으로 채용한다는 특별 조건이었던 것이다. 회사 측이 보낸 서류에 정식으로 서명을 했다는 소식을 막상 접하니 무척 다행스럽다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로는 가슴 찡함도 묻어났다. 그것은 그간 아이의 학업과정이 그리 순탄치 않았으므로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2005년 겨울, 아이가 중학교 졸업을 코앞에 둔 어느 날, 나는 아이의 담임선생으로부터 충격적인 전화를 받았다. 그 내용은 내 아이가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아 서울 시내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믿기지 않아 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아이의 성적이 자기 반에서 거의 밑바닥을 헤맨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상급학교 배정에는 별 문제가 없을 줄로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내 아이가 고교 진학을 할 수 없다니!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현기증이 일어 수화기를 겨우 귀에 붙인 채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도무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답답하기만 했다. 그렇게 힘든 나날이 무겁게 흘렀다. 아이는 아이대로 잔뜩 주눅이 든 채 자기 방에 틀어박혀 가족들에게 일체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았으므로 집안 분위기는 매우 어둡고 우울했다.

아이는 학업 성적은 비록 좋지 않았으나 운동을 좋아하고 성격도 명랑한 편이었다. 사춘기였지만 말썽 한번 부리지 않았고 게다가 그림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인문계 고교도 못 가는 처지에 그림 실력이 남보다 좀 앞선들 그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의 마음은 초조감을 더해 갔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간절함에 서서히 지쳐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전혀 예상치도 못하게 아이의 운명을 결정지은 어느 지인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차라리 검정고시 학원을 보내세요. 어차피 실업계 고등학교 안 갈 바에는…”

“검정고시?”

귀가 번쩍 뜨였다. 그 무렵까지만 해도 나는 검정고시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저 일부 특정한 사람들이나 겪는 과정쯤으로 여기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집으로 찾아와 자신의 생각을 집요하게 밀어붙였다. 너무나 끈질긴 그 지인의 설득에 아내와 나는 어려운 결단을 내린 뒤 아이를 데리고 충무로에 있는 H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곧바로 아이를 H학원에 등록시켰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가 검정고시를 보는 날까지 어떤 때는 외로운 아이의 친구로, 때로는 과외선생 역을 기꺼이 도맡으며 아이와 함께 뒤돌아보지 않고 내달렸다. 그렇게 8개월쯤 지난 뒤 시험을 치른 아이는 무난히 검정고시를 통과하게 되었다. 이어서 그해 늦가을, 당당히 수능시험을 치렀다. 그때 아이의 중학교 동창들은 아직 고교 1년생이었으므로 무려 2년이나 빠른 셈이었다. 곧 이어 아이는 자신이 원하며, 타고난 소질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수도권 D대학의 산업디자인과에 합격했다. 검정고시 점수가 내신 성적으로 대체되는 덕도 보게 되었다. 정말 밑바닥에서 다 꺼져가던 불씨를 간신히 살려낸 기분이었다.

아이는 대학 재학 중에 입대, 군복무도 무사히 마치고 건강한 몸으로 복학했다. 그리고 입대 전보다 더 열심히 학업에 열중한 결과, 이제 취업까지 보장되는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가 크게 내세울 것은 아직 없다. 아이는 이제, 아득한 곳에 머물러 있는 더 큰 목표점을 향하여 겨우 첫 발을 내디딘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학력이나 배경도 없는 평범한 아이인데, 다만 고교 진학이 좌절된 아픔을 잘 견뎌내고 동기생보다 빨리 사회에 진출한다는 뿌듯함만 있을 뿐이다.

나는 오로지, 아이가 앞으로 기나긴 인생의 항해를 하는 동안 숱하게 맞닥뜨릴 여러 시련들을,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조용히 응원하고 또 응원해 줄 것이다.

<김부조 시인·동서문화사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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