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향연
말씀의 향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6.2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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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대 울산광역시의회가 걸음마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나면서 확연히 달라진 게 있다. ‘무력의 논리’ 대신 ‘말씀의 위력’이 의정단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17일 오후 열흘 회기의 의사일정을 마무리하는 제138회 임시회 2차 본회의가 열린 의사당 본회의장은 근래 보기 드물게 말씀의 위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평소 30분이면 족하던 본회의가 무려 2시간 5분을 끌었다는 사실이 웅변으로 입증한다. 여야 사이에 벌어진 ‘말씀의 경연’은 울산광역시가 제출한 2011년도 제1회 추경예산안 심사에 대한 시각 차이 때문에 그 판이 커지고 만다. 점잖게 표현해서 ‘말씀의 경연’이지 실은 ‘입씨름’이요 설전(舌戰)이었다.

지난 14일, 환경복지위원회를 제외한 3개 위원회(의회운영위원회 포함)는 늘어난 1천19억원 가운데 모두 해서 0.37%에 불과한 3억8천500만원을 삭감 조정하고 16일 열리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넘긴다. 하지만 여당 의원이 수적으로 우세한 예결위는 야당이 불요불급하다고 판단한 ‘청사 갤러리’화에 따른 예산 4천만원(2건)을 표 대결까지 가면서 기어이 부활시키고 만다.

이 점이 야당 의원들의 자존심에 불을 지른 것일까. 야당은 다음날 입심 좋은 류경민 의원을 앞세워 수정안을 올린다. 예결위 심사보고를 마친 추경예산안과 야당이 따로 제출한 수정추경안이 맞대결을 벌이게 된 것.

박순환 의장이 수정안에 대한 토론을 선언하자 예결위원장인 여당의 윤시철 의원이 먼저 반대토론에 나섰다. “이번 추경은 상임위별로 충분한 심의를 거쳤고, 예결위에서도 충분히 토의했습니다. 따라서 수정동의안으로 50억원 이상을 삭감한다면 상임위와 예결위를 무력화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리고 야당을 향해 나름대로의 느낌을 전했다. 소감이 아니라 일침이었다. “사업의 필요성은 무시하고 실적 위주로 일률적으로 또는 목표를 정해 두고 삭감하는 것은 바람직한 예산안 심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찬성토론이 없을 리 없었다. 야당의 하현숙 의원이 작심하고 나섰다. “시대도 변하고 행정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도 변하고 있습니다. 당초에 문제가 될 것 같은 사업은 당초예산에서 좀 깎았다가 추경에서 버젓이 원상회복시키려는 행태가 지금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또한 관례적으로 추경예산 심의가 당초예산 심의보다 수월하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집행부를 겨냥한 하 의원의 발언은 다시 의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회공헌사업’으로 구상했다가 일부 ‘재정사업’으로 돌린 태화루 복원사업을 예로 들었다. “이런 예산이 불요불급한 예산의 대표적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집행부에 경종을 울리고 시민이 부여해준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는 것을 알릴 수 있도록 수정안 통과를 당부 드립니다.”

마이크는 다시 여당의 한동영 의원 쪽으로 넘어갔다. 그의 지론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추경예산안에 시급한 사항만 넣는다면 시민의 예산이 언제 적재적소에 쓰일 수 있겠습니까? 또 52억 3천400만원이란 예산을 사장시킨다면 이 예산은 불용처리가 되어서 낭비가 되고 고스란히 잠들게 될 것입니다.”

다시 야당의 천병태 의원의 찬성토론과 이재현 부의장의 소감발언이 이어졌고 의장은 기립표결을 선언했다. 천 의원은 윤시철 의원의 의견을 반박했고 이 부의장은 ‘거수기 역할’ 을 비판했다.

이번에는 야당의 김진영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으로 표결방법에 이의를 제기했다. 기립표결 대신 부저 누르는 방식을 제안했고, 의장은 “기계는 다 쓰일 데가 있다”며 직권으로 기립표결을 강행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해도 자신을 ‘반쪼가리 초선’이라고 소개하고 모 야당 의원을 향해 곡사포를 날린 여당 소속 김일현 의원의 등장이었다. “그래서 의회가 뭔지도 잘 모릅니다.”말 속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어제 예결위에서 마지막 계수조정을 하는 과정에 야당의 상당한 중진의원께서 ‘많이 좀 깎아놓고 실·국장들이 와서 바짓가랑이 붙잡을 때 그때 좀 살려주면 우리 의원들의 위상이 살아난다는 말씀을 저한테 했습니다.”

김 의원의 발언은 반론과 함께 엄청난 화제를 불러왔고, 끝내 그는 상대방 의원을 찾아가 정중히 사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하간 ‘2011년 6월 17일 오후’는 ‘말씀의 향연’이 대단했던 날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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