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발언 있습니다”
“신상발언 있습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6.13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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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대 울산시의회의 여야 의원들 사이엔 밀월(蜜月)이란 단어가 생소해 보일지 모른다. 지난해 7월 개원 초기부터 멱살을 잡고 잡히는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일까. 1년을 지나면서 그들 사이엔 동서를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보다 더 견고한 담벼락이 둘러쳐지고 있는 느낌이다.

14대 7. 수적으론 한나라당 의원이 2배나 되지만 절반 수준인 민주노동당 의원단을 능히 제압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마음이 너그러워서 혹은 자체결속력이 느슨해서일 수도 있다. 그 때문이든 아니든 한나라당 의원단 지도부에게는 곧잘 스트레스가 닥친다.

그래서일까. 야당 의원단과 마주칠 때는 양보라는 게 없다. 양보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몽니를 부린다’는, 안 좋은 점수를 받기도 한다.

한나라당 의원단 대표 격인 김종무 의회운영위원장이 지난 2일 모처럼 쓴 소리를 내뱉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만으로 조직된 ‘풀뿌리 의정포럼’이 마련한 ‘울산시의 고유황유 허용정책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 석상에서였다. 박순환 의장을 대신한 축사의 첫머리는 물론 덕담이었다.

“우리 의회 안에 6개 의정포럼이 있고 그 중에서도 풀뿌리 의정포럼은 활동이 매우 돋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좋은 의제를 가지고 시민의 발전, 시정의 발전에 정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고 나서는 작심한 듯 포문을 열었다. “이 자리에 집행부에서 나오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안 나와서 보기에 참 안 좋습니다. 풀뿌리 의원님들에게 몇 마디 드려야겠습니다. 하기 좋은 말로 ‘집행부를 견제한다고 하지만, 이 자리에 집행부가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토론회장인 의사당 4층 의원세미나실이 일순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사실 주최 측은 관계공무원의 참석을 요구했고, 처음엔 동의를 얻었다가 퇴짜를 맞았다는 후문이 있었다.

김 위원장의 축사(?)는 거침없이 이어졌다. “오늘 이후부터라도 집행부 관계공무원들에게 힘내라고 격려의 말이라도 한 번 건네면 힘이 솟구칠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다’고 하면 그분들은 호감을 느끼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배려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라고 한 번 외쳐 보십시오.”

김 위원장이 자리를 뜨는 순간 누군가의 입에서 “사랑합니다!”란 말이 튀어 나왔다. 그러나 어조로 보아 그 말은 진심이 아닌 비아냥거림으로 들렸다.

그로부터 엿새 후인 지난 8일 오전, 제138회 임시회 1차 본회의 시각. 신상발언 요청이 꼬리를 물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천병태 민주노동당 시의원단 대표의 요청이 먼저였고 한나라당 허 령 행정자치위원장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천 대표가 아니었더라도 민주노동당 쪽에선 누군가가 ‘신상발언’ 신청을 예비하고 있었다.

“신상발언 있습니다.” 옹기엑스포 조사특위 구성을 이미 제안한 바 있는 천 대표로서는 “지금은 시기가 아니라”는 허 령 위원장의 주장이 달가울 리 없었다. 특히 ‘정략적 발언’이라고 꼬집은 허 위원장의 지적은 자존심마저 심하게 건드리는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시의회는 행정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임무입니다. 1년에 한 번뿐인 행정사무감사 때 다룰 사안이 아닌 것입니다. 본연의 기능을 왜 포기하라 하고, 왜 ‘정략적 발언’이라고 합니까? 동료의원으로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 대표의 발언은 사뭇 훈시 조로 해석됐다.

“신상발언 있습니다.” 허 령 위원장도 더 할 말이 있었다. “본의원의 발언에 동료의원이 신상발언을 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냉철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울산에서 개최됐고 잘 됐다는 평가도 많이 받은 옹기엑스포가 마치 비리엑스포로 비쳐지고 있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워 5분 발언을 한 것입니다.”

1차 본회의를 마칠 즈음 허 위원장은 천 대표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천 대표는 계면쩍어 하면서도 그의 ‘몸 인사’를 받아들였다. 평소 같으면 같은 상임위원회에서 좋은 사이로 지낼 수도 있을 법한 일이지만 그놈의 당(黨)이란 것이 사람사이를 그렇게 갈라놓고 있는지 모른다.

“저도 신상발언 있습니다. 여야, 개원 1주년을 앞두고 무소속, 교육의원 할 것 없이 모두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지내도록 의회규칙을 개정하거나 조례라도 제정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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