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 디자인
발상의 디자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6.0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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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란 낱말이 한창 유행을 타고 있다. 7일자 울산시 보도자료는 “울산시가 개발한 가로 환경 시설물 6건이 ‘디자인 법적 소유권’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등록된 디자인은 태화교 난간, 울산교 난간, 택시 쉼터, KTX 리무진버스 안내판, 오산 안내판, 버스정류장 안내판으로, 시는 “2010년에 수립한 ‘울산시 가로 환경 시설물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반영해 설계됐다”고 밝혔다. 또 이들 디자인은 ‘디자인 보호법 40조’에 따라 향후 15년간 법적 보호를 받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디자인이란 용어는 지난 2일자 보도자료에도 나타났다. <이젠 도시 디자인에 시민도 참여한다>는 제목 아래 “울산시는 올해 처음으로 도시경관 디자인 공모전을 마련, 시민 만족도를 높이는 창조적 생태경관도시를 조성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창조적 생태경관도시 울산’을 주제로 광장, 공원, 산책로, 수변과 같은 ‘공공공간’과 가로등, 벤치, 휴지통, 펜스를 비롯한 공공시설물에 대한 디자인을 공모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쯤 되면 울산도 이미 ‘디자인 시대’에 접어든 셈이다.

‘디자인’이란 개념 속에는 아름다움이나 멋스러움 같은 밝고 긍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동시에 진취적인 이미지와 의지도 내포돼 있다.

그래서일까, 디자인이란 낱말은 다른 명사와 짝짓기를 하면서 무수한 2세들을 쏟아내곤 한다. 산업디자인, 공업디자인, 실내디자인, 인테리어디자인, 무대디자인, 시각디자인, 편집디자인, 인디자인에다 근자에는 웹디자인이란 신조어까지 합성어 대열에 끼어들었다.

울산 남구청에는 이미 ‘도시디자인과’가 만들어져 시가지를 아름답게 꾸미는 향도 역할에 여념이 없다.

찬찬히 살펴보면, ‘디자인 홍수’의 이면에는 예외 없이 ‘발상의 디자인’이 자리 잡고 있다. ‘발상의 디자인’은 지난해 8월 하순, 경남 남해에서 진행된 ‘2010년도 울산광역시의원 연찬회’ 때 가슴으로 다가왔다,

이름도 고운 상주 은모래해수욕장 언저리의 유람선 선착장은 그 흔하디흔한 일자형 직각의 구조물이 아니었다. 다리를 뻗고 편하게 앉을 수 있는 계단식이었고, 낚시꾼뿐만 아니라 여행객들의 휴식공간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계단식은 늘 꿈꾸어 왔던 디자인이었는데 여기서 보게 되다니. 참 반갑네요.” 방어진항 출신 권명호 의원(산업건설위원장)에게도 계단식 선착장의 발견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1990년대 말쯤, 심완구 당시 울산시장이 담당 국장에게 별난 지시를 하나 내렸다. “시청 옥상에 정원을 꾸밀 수 있겠는지” 검토해 보라는 지시였다. ‘옥상 조경의 중요성’에 관한 필자의 기사가 빌미가 됐다.

요즘과는 달리 당시로서는 ‘옥상 조경’ 문제가 작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일까. 담당 국장은 한 달이나 고심한 끝에 ‘불가’ 판정을 내리고 만다. “옥상이 흙의 무게와 빗물 누수에 견디기 힘들 것”이란 이유가 달렸다.

몇 해 전 구암문고 삼산동 본사의 ‘옥상 조경’이 시로부터 ‘대상’을 받은 사실을 떠올리면 격세지감마저 든다.

5,6층 이상의 비교적 높은 건물이라면 지금 이 시각이라도 꼭대기에 올라가 한 번쯤 내려다보자. 일반주택이든 공공건물이든 썰렁한 느낌을 지우기가 무척 힘들 것이다. 게다가 건물의 외벽들은 무미건조한 ‘회색지대’를 연상시키지나 않는지. 겉보기에 20여 년 전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면, 이는 ‘발상의 디자인’이 오랜 동면에서 깨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울산시가 모처럼 ‘디자인 개념’에 눈을 떴다는 것은 몹시 놀라운 변화다. 아니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디자인 소유권 확보 노력과 도시경관 디자인 공모전이 그 좋은 본보기에 속한다.

하지만 공모전의 대상에는 유감스럽게도 ‘건물’은 빠져 있다. 멋대가리 없이 위로만 치솟아 스카이라인마저 인위적으로 가려 버린 수십 층짜리 복합건물의 건축허가와 맥을 같이하는 것인가.

차제에, 시가지 건물 외벽을 아름답고 멋진 색깔이나 벽그림으로 치장하고, 옥상에는 플라스틱 물탱크 대신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초화로 단장하도록 인센티브를 주면 어떨까. 20 수년 전 다녀온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건물들은 어느 하나 똑 같은 색깔, 똑 같은 모양새가 없어서 더더욱 아름다웠던 기억이 남아 있다. 시 당국이 법규로 규제하기 때문이라는 게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7일자 조간신문은 때마침 “옥상 조경이 섭씨 5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전문가의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발상도 디자인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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