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을수록 좋은 것
짧을수록 좋은 것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5.30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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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을수록 좋은 게 있다. 유행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일부 여성계를 쓰나미처럼 덮치고 있는 ‘하의 실종’ 풍조를 예찬하려는 게 아니다. ‘스피치’의 길이를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이런 농담에는 이미 길들여져 있다. “S자로 시작되는 스커트(Skirt)와 스피치(Speech)는 짧을(Short)수록 좋다.” 특히 뒷부분이 마음에 끌려서다.

제4대 울산시의회 하반기 의장을 지낸 윤명희 위원장(한나라당 울산시당 여성위원회)은 축사나 격려사가 2분을 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박수는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앞서 인사한 분의 말씀이 지루했다면 박수의 강도는 더욱 세지기 마련이었다.

제5대 전반기 의회를 이끌고 있는 박순환 의장 역시 스피치가 짧기로 정평이 나 있다. 점잔을 빼지 않아도 되는 자리라면 특유의 익살까지 보태 웃음 전도사가 되기도 한다.

지역 문화계의 한 원로는 말씀이 길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격려사가 20∼30분을 넘어서는 일이 예사였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주최 측은 초청장은 보내면서도 말씀만은 제발 말아달라는 당부를 일부러 사족삼아 달기도 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자신을 제3자의 시각에서 바라다본다는 것, 즉 자신을 ‘객관화’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풀기 어려운 숙제인지도 모른다.

스피치가 길기로는 지방의원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행사장에서의 인사말씀 말고도 의사 표시 수단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서면질문이 있고 5분 또는 4분 자유발언이 있고 시정질문 또는 구정질문이 있다. 문제는 그 길이에 있다.

서면질문의 길이가 길면 이해하기에 참 편할 때가 있다. 그러나 돌아오는 서면답변의 길이가 그만큼 더 길어진다는 점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길다 보면 이해하고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표현의 잘못으로 난해해진 경우라면 매우 난감해질 때도 있다. 그런 어려움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계층은 기사로 다듬어 내야 하는 언론 종사자들일 것이다.

무턱대고 길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사실 ‘스커트 자락’이 아니더라도 짧을수록 좋은 경우가 더 많다. 서면질문과 자유발언과 시정·구정질문이 자신의 유식함을 과시하는 도구가 아니라 미숙함을 드러내는 악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 특히 유념하기를 권유하고 싶다.

올해 초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재경 울산향우회 신년교례회 때의 일이다. 지역 국회의원들이 주최 측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한 말씀’을 정중하게 거절하는 모습은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주인과 손님을 제대로 구분할 줄 아는 안목을 지니고 있었고, 여러 의원들의 말씀을 길이로 환산했을 때 돌아올 부정적인 결과를 지혜롭게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짧을수록 좋은 것. 혹자는 이를 ‘간결의 미학’이라고 부르기를 즐겨했다. 간결의 미학은 인간관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거울로 치부된다. 남의 말은 길게 듣더라도 나의 말은 짧게 할 줄 아는 겸손함은 스스로 나를 높이는 길이 되기도 한다. 취재 길잡이에도 비슷한 격언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얼마 전 국회에서 한 야당 의원에 의해 필리버스터(filibuster)가 선보일 뻔했다. 하도 오래 전에 보아왔던 터라 생경스럽다기보다 반갑기조차 했지만, 끝내 그럴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필리버스터’의 사전적 의미는 ‘의회 안에서 행해지는 합법적이고 계획적인 의사진행 방해 행위’다. 네이버 지식사전은 “주로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거나 필요에 따라 의사진행을 견제하기 위해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의사진행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필리버스터의 유형으로는 장시간 연설, 의사진행 또는 신상발언의 남발, 각종 동의안과 수정안의 연속적인 제의 및 장시간의 설명, 총퇴장 같은 방법이 대표적이다. 이는 모두 합법적이라는 점에서 폭력 등에 의한 방해와는 다르다. 하지만 폐단도 적지 않다 보니 많은 국가에서 의원의 발언시간을 제한하거나 토론종결제 등으로 보완하고 있다.

울산시의회에서도 5분 자유발언이나 시정질문에 시간제한을 두고 있다. 30일 오전에 열린 ‘2010 세계옹기문화엑스포’에 대한 행정사무처리상황 보고 자리에서도 한 의원의 발언시간에 대해 제한 권고가 있었다. 스커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피치는 짧을수록 좋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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