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그리고 노무현
5월, 그리고 노무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5.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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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들은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도 하고 ‘가정의 달’이니 ‘행사의 달’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5월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보통사람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올해 5월 23일은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지 2주기가 되는 날인 모양이다. 깜빡 잊고 있었는데 ‘노무현대통령 2주기 울산추모위원회’란 단체가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비로소 알게 됐다.

정당 인사들도 있었고 그 숱한 ‘촛불집회’에서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다른 말 다 빼고 ‘5월은 노무현입니다’란 슬로건을 현수막에 적어서 나왔다. 기억하자는 뜻일 것이다.

2년 전 5월, 울산 종하체육관에 고인의 분향소가 차려졌을 때의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직 일러서 조문객이 몇 안 되는 시간대에 나타난 인사는 정천석 당시 동구청장이었다. 그의 언행은 고인을 진심으로 추모하고 있었다. 여느 단체장의 입에 발린 백 마디 말보다 그의 한 마디에는 진솔함이 묻어 있었다.

그는 한나라당 소속이면서도 자신이 한동안 DJ맨이었고 노무현도 싫어하지 않았다는 말을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끄집어냈다. 그는 의리를 알고 소신이 있는 정치인으로 비쳐졌다.

필자는 부산의 어느 방송국 소속 정치부기자 시절에 처음 알았던 ‘변호사 노무현’을 ‘대통령 노무현’보다 더 또렷이 기억한다. 대통령직에 도전하기 전, 그는 국회의원직, 부산시장직에 먼저 도전장을 던졌다.

1980년대 말쯤인가, 부산의 인권변호사 노무현은 동구지구당인가, 지구당을 하나 맡아서 정계 진출을 꿈꾸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가난한 야당을 같이했던 변호사 이흥록이 있었고, 그의 덕분에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이 된 김재규가 있었고, 한나라당 사무총장까지 지낸 안경률도 있었다. 그들은 한동안 의기가 투합했고 소주잔을 부딪치며 울분을 같이 토하기도 했다.

민주당 대통령 예비후보 노무현을 만난 것은 그 한참 후의 일로 기억된다. 곳은 심완구 시장 시절의 울산광역시장 비서실 안이었고 때는 대선고지를 향해 당내경선에 도전하던 무렵이었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 덕담을 나눈 일이 마지막 상견례가 될 줄은 그도 필자도 사실 몰랐다. 잘 된 사람에게 구태여 연락 취할 필요가 어디 있나 하는 어설픈 생활신조 때문이기도 했다.

그를 가까스로 다시 만난 것은 2년 전, 울산대공원 동문 광장에 차려진 분향소에서였다. 둘은 속으로만 대화를 나눴다. 작년 이맘때쯤에도 한 번 더 분향소를 다녀왔지만 1년 전과는 분위기가 전혀 딴판이었다. 정권마저 넘어간 시기인데다 비까지 구질게 내려서인지 찾는 발길은 뜸했고, 인적 끊긴 분향소는 정치무상마저 느끼게 했다.

그리고 다시 1년, 그의 기일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6·2 지방선거와 4·27 재선거에서 민심의 변화를 피부로 감지해서일까. 그를 받들고 추모하는 세력들은 다시 울산시민들 앞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당당하게 ‘노무현대통령 2주기 울산추모위원회’란 이름으로.

그러나 집권여당 사람들의 정서는 정천석 전 동구청장의 그것과는 닮은 데가 없어 보인다. 그들은 애써 지우려 노력해 왔고 애써 지우기를 되풀이해 왔다. 지울 대상은 바로 인간 노무현의 흔적이었다. 대통령 노무현이든, 변호사 노무현이든, 권좌에서 물러나 고향에서 농사나 짓겠다고 낙향했던 ‘사람 사는 세상’의 보통사람 노무현이든.

그 바람에 많은 것들이 지워지고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노무현이 있었기에 성사될 수 있었던 울산국립대학(울산과기대)의 설립과 울산신항만의 개발, 그리고 KTX울산역 유치에 이르기까지, 위정자들은 지우려 하고 시민들은 까마득히 잊어버린 지 오래다. 인간이 쥐락펴락하는 정치가 배반의 도덕률을 어진 시민들에게 심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맞이하는 5월, 전국이 요동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 노무현의 흔적 때문이요, 흔적 지우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세종시가 그러했고, 동남권 신국제공항이 그러했고, 과학벨트가 그러하지 않은가.

아이야. 5월 21일 울산대공원 동문광장에 저 세상 사람 노무현이의 분향소가 차려지거든 앞뒤 좌우 돌아보지 말고 가서 얼른 국화 한 송이라도 꽂고 나오너라. 그것이 망자에 대한 도리일 줄 누가 알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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