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화》 청와대를 떠나며
《제100화》 청와대를 떠나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5.0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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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공적(公的)인 것과 사적(私的)인 것을 구분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또한 인간관계를 맺게 된 동기가 중요한 일을 수행하면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여가에 취미생활을 하다가 우연하게 맺어진 경우도 있다. 모두가 어떤 결과로 끝을 맺는가는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평가에 따른다. 나도 수많은 인간관계를 목적으로 맺어온 것 보다는 결과로 나타난 인간관계가 두드러지게 많아 보인다. 지금 생각하면, 청와대에서의 수석비서관 일은 누가 말했듯이 아주 위험한 인간관계 지뢰밭을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나는 지뢰를 밟지 않고 무사히 넘어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안타까웠던 것은,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의 본심을 알아주지 않은 일이 발생했던 일이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최선을 다 해준 나의 노력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만의 판단과 선택에 의해 일이 잘 못 풀렸다가 이 일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고, 그의 본바탕이 그랬는지 결국은 그의 인생은 일그러진 작품이 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지뢰밭에서 튕겨져 나오게 되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A씨는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유명 사립대학에 있을 때 내가 초빙하여 정신문화연구원의 상위 책임자급 부장으로 근무하였는데 학계의 원로학자 원장 앞에서 다른 책임자급 부장과 멱살잡이 시비를 벌였다. 원장 앞의 간부 회의에서 생긴 일이어서 나도 그 자리에 있다가 두 사람을 나의 힘으로 뜯어 말려 겨우 진정 시켰는데 A씨는 일종의 제스추어로 책상을 정리하고 사표를 내겠다고 큰 소리 치며 외국으로 출장을 가버렸다. 이때 원장이 자신이 시킨 일이었기 때문에 그냥 사표를 수리해버렸다. 그러나 A씨는 정부의 어느 장관으로 잠시 있다가 문교부 장관으로 발령이 났다. 정신문화연구원의 상급 기관이었다. 일상생활의 악덕(Ordinary Vices) 중의 하나인 사람의 잔혹함이 나타나는 장면이 이때 연출되었다. A씨가 정신문화 연구원의 원장에게 전화로 바로 사표를 내라고 한 것이다.

그때는 내가 청와대에 있으면서 대통령으로부터 정신문화연구원을 챙겨보도록 지시를 받고 있는 터라 원장을 직접 만나 뵙고 임기에 맞춰 정리하시기를 부탁드렸다. 또한 내 나름대로 다음 원장을 물색하고 있었다. 절차상 나는 세 사람을 문교부 장관 A씨에게 보여주며 의논한 뒤 대통령에게 의논 드려 세 사람 중의 하나인 K씨로 허락을 받았다. 이 과정에 A장관은 자기가 사적으로 원장으로 내정했노라고 이미 다른 사람에게 연락을 했기 때문에 난감하게 되었다. 이 일로 A씨의 잔혹함이 다시 살아나 K씨를 원장으로 추천한 배경(K씨가 대학총장 시절에 비상계엄 선포를 철회하라고 하여 총장자리에서 물러난 일이 있다는 사실)을 대통령에게 비선을 통해 보고하였다. 대통령 명령으로 총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사람을 다시 정신문화원장으로 임명한 실책을 저지르게 한 사람이 이상주 교문수석비서관이라는 것이었다. K씨는 정치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진정한 학자이었다.

마침 비서실 개편이 있는 시점이었다. 김경원 비서실장, 우병규 정무1수석, 이웅희 홍보수석 등과 함께 나도 개편되는 쪽에 들어가게 되었다. 내 나이 44세에 어디에 가서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가? 정리=박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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