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부터 이어져 온 여성상의 한반도식 결정체
구석기시대부터 이어져 온 여성상의 한반도식 결정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4.10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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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8월 울산 서생초 교정 문화재 조사중 발견
강조된 가슴·골반은 선사시대 세계도처에서 확인
대곡리 암각화 인물상도 같은 개념으로 파악 가능
▲ 뮐렌도르프의 비너스.
높이 3.6cm의 자그마한 여성 소상 하나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출토지는 울산 신암리이며, <여인상 土製女人像>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머리도 없고, 팔도 다리도 없으나 적당히 발달한 젖가슴과 골반 부위 그리고 잘록한 허리 등을 놓고 볼 때, 그것이 여성을 형상화한 것임을 곧장 알 수 있다. 이 소상(塑像)과 같이 얼굴과 팔 그리고 발이 없는 인체 조상을 ‘토루소’라 부른다. 이 상에 관하여 발굴 보고서 이외에는 특별히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발굴된 조형물은 있지만, 이에 관한 깊이 있는 연구 성과들을 살피기가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미술품만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온 전문가가 없는 형편이며, 그런 까닭에 아직까지도 이들을 전문적으로 정리하고 소개해 놓은 선사미술 자료집 한 권도 변변히 없는 실정이다.

이 상은 1974년 8월에 국립중앙박물관이 꾸린 조사단이 서생초등학교 교정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상의 출토 지점은 신암리 2지구이며, 그곳은 구릉 하단부 바닷가에 형성된 낮은 충적지대라고 한다. 보고서는 또한 이 상과 함께 출토된 유물들이 신석기 중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보고서의 집필자들은, 이 상의 머리와 사지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암리 여성 소상은 석영과 장석이 섞인 점토를 이용하여 빚은 다음 구은 것이며, 그러므로 이는 테라코타인 셈이다. 비록 많은 부분이 떨어져나가 온전한 모습을 살피기는 어렵지만, 이 상은 처음부터 앉아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얼핏 보면, 이 소조상은 겨우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에 온전한 곳이 한 곳도 없는 흙덩어리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소상은 이름 모르는 신석기시대의 울산 신암리 또는 그 인근에 거주하였던 제작자가 같은 시대의 여성에 대해 품었던 감정을 흙으로 빚어서 형상화한 것이다. 수천 년의 세월을 흙속에 묻혀 있다가 발굴 과정에서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낸 이 여성상! 그것은 놀랍게도 구석기 시대부터 만들어져 오던 여성 비너스상의 신석기식 변형이었던 것이다. 오랜 기간 방치된 탓에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원래의 모습을 잃기는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여성상으로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온갖 풍상을 견뎌온 이 상을 앞에 두고 우리는 아득히 신석기 시대의 여성들과 더불어 우리 조상의 계보에 대해서도 새롭게 더듬어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이 상을 대하면 애석함, 안도, 뿌듯함 등 온갖 미묘한 감정들이 교차한다. 만약 이 상과 그것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더라면, 그것은 하찮은 흙덩어리로 취급되어 또 다시 흙속에 나뒹굴다가 완전히 파손되어, 그런 것이 있었는지 조차도 모르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상이 지니고 있는 미술?문화사적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한번만 생각해 본다면, 그리고 그것이 그때 망실되어 볼 수 없게 되었다면,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이 상을 바라보면, 한편으로는 그것이 우리 앞에 남아 있음에 새삼스럽게 안도하게 되며, 동시에 등에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상은 전 유라시아 대륙에서 출토되고 있는 신석기 시대 여성 비너스의 한반도식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미술사에서는, 선사시대에 제작된 자그마한 여성상들을 일반적으로 ‘비너스’라 부른다. 그것들은 주로 돌멩이나 뼈 그리고 뿔 등을 이용하여 만들었으며, 크기는 10cm 전후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서 가장 작은 것은 4.7cm 정도이며, 또 큰 것은 22cm에 이르는 것도 있다. 그러나 크기와 관계없이 이들은 대체적으로 눈과 코 그리고 입 등 얼굴의 세부가 생략되었다. 생김새에 따라서 이들을 두 가지 타입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그룹은 젖가슴과 배 그리고 엉덩이 등을 매우 풍만하게 표현한 것들이다. 다른 한 그룹은 전자와는 달리 매우 야윈 여성상이다. 이 두 가지 타입 모두 여성 생식기를 삼각형 또는 타원형으로 분명하게 표현해 놓고 있다.

이들은 모두 환조의 지닐 미술(動産美術)이지만, 정면과 측면 등 그것을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그 성징이 뚜렷이 드러나기도 하고 또 사라지기도 한다. 정면에서 볼 때 특징이 잘 나타나는 것으로는 레스퓨그의 비너스가 있으며, 측면관의 것으로는 샤비냐노의 비너스(사진)가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이다. 그동안 서유럽의 그라베트 문화와 솔뤼트레아 문화기 유적에서 발견되었던 것들이 코스티엔키(사진), 가가리노 등 동유럽이나 말타와 브레트 등 바이칼 호안에서도 발견됨으로써 이들이 특정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특수한 문화적 현상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비너스상은 약 40여 개 정도이며, 그 가운데서 약 20개가 바이칼 호안의 말타와 브레트 등 두 유적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가장 낯익은 것은 1908년에 오스트리아의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된 비너스(사진)이다. 그것은 크기 10cm 정도의 돌멩이를 활용하여 만든 것으로, 비만형 비너스상의 전형 가운데 하나이다. 가장 작은 것은 그리말디에서 출토된 소위 ‘꼭두 인형’으로 겨우 4.7cm에 불과하다. 이 작은 형상은 측면에서 볼 때 그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데, 크기는 비록 작을지라도 발달된 가슴과 배 그리고 엉덩이 등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야윈 형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로주리 바스의 마들렌느 기 문화층에서 발굴된 뷔브레의 비너스(사진)이다. 이 형상의 크기는 8.2cm인데, 앞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와는 달리 가슴은 생략되었고 또 배와 엉덩이 등도 빈약한 모습이지만, 생식기만은 또렷이 표현되어 있다. 이렇듯 야윈 이 상을 두고 ‘바람 끼 많은 비너스’라고 부르는 점이 흥미롭다.

이들에 대해서는 부족의 어머니 등 어머니 숭배, 성 생활의 수호자, 풍요의 여신, 출산의 성(性), 생리 등을 상징한다거나, 뚱뚱한 것은 결혼한 여성을, 야윈 것은 미혼 여성을 나타낸 것, 그밖에도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형상화한 것 등 여러 가지 설들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간에 이러한 비너스 상들을 통해 서쪽으로는 프랑코 칸타브리아 지방에서부터 동으로는 바이칼 호안에 이르기까지의 광대한 지역에서 같은 구석기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여성에 대하여 품었던 인식의 한 단면을 살필 수 있었다. 뚱뚱한 여성과 야윈 여성 사이의 차이는 틀림이 없이 있지만, 삼각형의 생식기를 표현함으로써 그것이 여성임을 분명히 하였다.

구석기시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여성 비너스상은 이후 신석기와 청동기시대에도 이어져 변함없이 제작되었다. 달라진 것은 돌이나 뼈 그리고 뿔 등을 이용하였던 것에서 흙으로 빚어서 만들었거나 빚은 다음 구은 테라코타 비너스(사진)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의 차이는 전 시대에는 서 있는 모습이었으나, 신석기시대가 되면서 앉아 있는 모습으로 바뀐 점이다. 여전히 가슴과 배 그리고 엉덩이는 과장되었고, 생식기도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표징으로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신석기시대의 비너스상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는 이라크 북부 지역의 쟈르모 마을에서 발견된 것이며, 제작 시기는 대략 기원전 5천년 경이다. 그에 이어서 기원전 4천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 나가다 시대의 여성좌상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기원전 3천년 경이 되면서 이와 같은 비너스 상에는 보다 많은 변화가 오는데, 그동안 지속적으로 강조되어 왔던 가슴이 생략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청동기 시대가 되면서 비너스 상은 이전과는 또 다른 양상으로 변화되었는데, 그것은 목이 길어지고, 얼굴에는 눈과 코 그리고 입 등이 묘사되기 시작하였다. 가슴에는 젖가슴이 표현되었으며, 허리 아래 부분은 꿀벌 꼬리 모양(사진)으로 처리되었다. 물론 그런 중에도 여성기는 변함없이 삼각형으로 표시하였다. 이와 같은 여성상을 두고 ‘바이올린’ 모양(사진)이라 명명되기도 하였다. 여성 신체에서 마치 바이올린과 같은 이미지를 추출해 낸 당시 사람들의 시각을 오늘날의 몇몇 광고들이 차용하고 있는 셈이다.

신암리에서 출토된 이 여성 토루소 상은 이라크 북부의 쟈르모나 이집트, 중앙아시아 각지에 산재되어 있는 소위 ‘테베(신석기 시대 이후 오랜 기간 이용되었던 주거지로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음)’ 그리고 내몽골의 동산취(東山嘴)나 우하량(牛河梁) 등지에서 출토된 흙으로 빚은 비너스 상들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동질성을 띠고 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그것들은 대부분 흙으로 빚어서 만들었으며, 앉아 있는 모습이고, 젖가슴과 배 그리고 엉덩이 등이 강조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그러한 특징들을 신암리에서 출토된 여성 토루소도 고루 갖추고 있다.

따라서 신암리에서 출토된 이 비너스 상은 구석기 시대부터 제작되어 오던 비너스 상의 한 종류이며, 그것은 중동과 내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의 여성 소상의 그룹 속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한 것이다. 이 상은 한반도에서 발견된 여성 소상 중 가장 고형이며, 이로써 신석기 시대 한반도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살필 수 있음은 물론이고, 대곡리 암각화 속 사람 형상과의 상관성도 살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신암리 비너스상은 유럽이나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 등지의 여성과 같이 소위 ‘지방둔증(脂肪臀症)이라 오해 받았던 구석기시대 비너스상이나 신석기시대 중동이나 내륙아시아 그리고 내몽골 등지의 그것과는 달리 균형 잡힌 아담한 몸매의 여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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