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현재 이어 줄 다섯개 징검다리
찬란했던 태화강 선사문화를 밝히다
과거·현재 이어 줄 다섯개 징검다리
찬란했던 태화강 선사문화를 밝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4.0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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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인 사유세계 읽어 낼 다섯개의 열쇠 제시
이제 평면적 해석을 넘어 심층분석 필요할 때
고래잡이 방법·도구·목적·분배 등 상세파악
▲ 울산 앞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떼. 저 고래를 잡았던 선사인들의 작살과 배와 작업 내용을 면밀히 추적하고 오늘날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됐는지 밝히는 것이 과제다.
암각화를 해독하기 위해 다섯 개의 열쇠를 제시한다.

암각화 해독의 열쇠가 없다면, 결국 우리는 여태껏 그랬듯이 또 하나의 현상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열쇠는 울산 신암리 유적에서 출토된 비너스이다. 두 번째의 것은 부산 동삼동 패총 출토의 그물 자국이 찍힌 토기 파편이며, 세 번째의 것도 역시 같은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사슴 형상이 그려진 토기 파편이다. 네 번째의 것은 경남 통영의 욕지도에서 출토된 돼지 소상이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의 것은 울산 남구 황성동 처용암 앞에서 출토된 고래 뼈 속의 작살이다. 이들은 모두 신석기 시대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것들이다.

암각화를 해석할 실마리는 대곡리 암각화 속에도 있고, 또 그동안의 고고학적 발굴과정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서도 찾을 수 있다.

고고 유물 중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타입이 있다. 하나는 조형예술품들이며, 다른 하나는 물질문명의 부산물인 생활 이기들이다. 이들 문명의 이기들은 조형 외적인 문제를 풀어내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그 중에서 조형예술품으로는 이 암각화의 제작 시기와 당대의 조형 양식 그리고 보편적인 미감 등을 추출해 낼 수 있다. 문명의 이기들로는 작살과 그물 그리고 배 등의 제작 능력과 포경업을 비롯한 어로의 실태 등을 추적하고 복원해 낼 수 있다. 이와 같은 문명의 이기와 조형예술품들은 당시의 문화상을 실증해 줄 것이고 또 편년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 실마리들은 그동안 답보 상태에 빠져 있던 이 암각화의 연구를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게 해 줄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것들은 그동안 단절되었던 시간을 연결시켜주는 징검다리이며, 당시의 제작 집단과 그들의 삶 그리고 사유의 세계 등이 저장된 또 하나의 메모리칩인 셈이다.

다섯개의 열쇠로 해독하려는 대곡리 암각화는 오래된 사진첩처럼 과거 어느 시간의 일들만 보여주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기억조차 못하다가 지난 세기의 후반기에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저 암면 위의 도상들! 그것들은 그 연원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지 조차도 모르는 시기에 이 땅에 살았던 조상들의 삶을 증언해 주고 있다. 그러나 그때의 모습들을 우리가 어떻게 읽어야 바른 것인지 많이 난감하다. 저 도상들이 도대체 어느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언제부터 사람들의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는지 등을 밝히는 일은 그래서 결코 쉽지 않다. 그동안에 흘러버린 시간들은 저것과 우리들 사이에 큰 벽이 되었고 또 강이 되었으며, 소통의 통로를 차단시켜버렸다. 우리와 저것 사이에는 그동안 벌어진 시간의 틈새를 메울 수 있는 징검다리들이 필요하다. 저 도상들이 제작자의 환상이 아니라 당시의 일상적인 일들이었음을 증명해 줄 또 다른 물증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들 앞에 부과된 과제는 저 대곡리 ‘건너각단’에 그림을 새긴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밝혀내는 일이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무엇을 하면서 살았고 또 어떤 시각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인지 등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왜 그곳에다 그림을 그렸으며, 그 까닭은 무엇이었고, 또 그린 다음에 그곳에서 무엇을 하였으며, 각각의 형상들은 그들에게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도 밝혀야 한다. 저 암각화는 언제부터 그려지기 시작하여 언제까지 그려졌으며, 제일 먼저 그려진 형상들은 무엇이었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도 밝혀야 한다. 각각의 형상들은 어떤 방법으로 그려졌고 또 그 속에 반영된 제작 집단의 조형 원칙은 무엇이었으며, 당시의 시대 양식과 대곡리 암각화 속의 그것과는 어떤 동질성 혹은 이질성을 갖고 있는지도 밝혀야 한다.

어디 그것뿐일까? 그림 속에 생생하게 묘사된 저 작살자비와 포경선들, 저 넘실대는 파도를 헤치고 고래의 바다(鯨海)로 나가서 그 고래들과 사투를 벌이고 또 만선의 깃발을 달고 돌아왔을 저 배들은 누가 만들었으며, 어떻게 만들었고 또 그 배들은 어떤 구조를 취하고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그 배들은 지금의 어디에서 만들었으며, 그것들을 만들었던 선사시대 엔지니어의 후손들은 어디로 갔으며,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찾아보아야 한다. 그 배 속에는 몇 명의 선원들이 탈 수 있었고, 선사시대 고래박사이자 명포수였던 작살자비의 후예들은 아직도 고래바다로 배 저어가는 꿈을 꾸고 있는지도 그리고 그때의 선원들과 오늘의 우리들은 어떤 관계인지도 밝혀야 한다.

고래 몸통 속에 그려진 작살은 무엇을 재료로 하였고 또 어떤 원리로 만들었으며, 왜 그곳에 그것을 그렸는지도 밝혀야 한다. 그때의 작살과 오늘의 우리들이 쓰고 있는 것과의 상관성은 무엇인지, 그동안 어떤 변화를 거쳐 오늘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는지도 밝혀야 한다. 뱃머리의 작살자비는 고래의 어디를 겨냥하고 작살을 던졌는지, 그 후에는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도 궁금한 사항이다. 작살 이외에는 어떠한 포경 도구가 있었으며,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였는지 등도 궁금하다. 잡은 고래는 어떻게 끌고 왔고, 어디서 누가 해체하였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해체한 후에는 그것을 어떻게 분배하였고 또 그 고기나 부산물들은 어떻게 활용하였는지도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림 가운데 보이는 그물은 무엇으로 만들었고 또 어떻게 짰으며, 그것으로 무엇을 잡았는지도 궁금한 사항들이다. 그물을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았는지 아니면 고래를 잡았는지 그것도 아니면 호랑이를 잡았는지 등도 밝혀야 한다. 그것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이 암각화의 제작 집단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었는지 등도 궁금한 사항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암각화 속에 그려진 각각의 동물들은 무엇을 형상화한 것이며, 주로 어떤 순간을 나타내었고 또 그것들을 바라본 기본적인 지각 방식은 무엇이었으며, 각각의 형상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살펴야 한다. 이 암각화 속에는 그려져 있으나 지금은 자취를 감춘 동물은 없는지, 그런 동물이 있다면 그것은 왜 자취를 감추었는지 등도 또한 밝혀야 할 사항이다. 그림 속에 그려진 동물 하나하나는 제작 집단의 생업과 토템 그리고 신앙 등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도 궁금한 사항이 아닐 수 없다. 어떤 것이 토템이고, 어떤 것이 숭배의 대상이었으며 또 식량원이었는지 살펴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나는 암각화 속의 도상들이 증언해 주는 당시 사람과 동물 그리고 생활이기들의 상관성, 즉 당시 사람들이 향유한 문화를 밝혀보고자 하는 것이다. 문화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온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생을 영위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펼친 일련의 일들의 총화인 셈이다. 바꿔 말하자면, 대곡리 암각화 제작자들에게는 어떤 이유에서였던 간에 고래가 필요하였고,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바다로 나가야 했으며, 또 그것을 죽여야 하였던 것이다. 이를 항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배와 작살 등의 도구들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의 효용성을 높이기 위하여 끊임없이 기술 개발을 하였던 것이며, 그 일련의 과정이 곧 문명사이고 또 그 결과물 중 일부는 물질문화의 유산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다섯 개의 파편(열쇠)들을 대곡리 암각화 속 도상들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리는 기초자료로 활용하고자 한다. 이 다섯 개의 파편을 징검다리로 삼아 과거와 현재 사이의 큰 틈새를 메워가고자 한다. 그것들을 딛고 단절의 강을 건널 것이며, 시간을 거슬러 위로위로 올라가 그 시원문화의 원형을 찾아 볼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망각 속에 묻혀 있던 대곡리 선사문화의 진면목이 무엇인지를 더듬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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