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 도상들로 더듬어 보는 문명의 여명기
암각화 도상들로 더듬어 보는 문명의 여명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3.2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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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3)- 이야기보따리
‘전 경주와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거나, 그 가치가 ‘삼성 브랜드의 가치 보다 더 크다’는 찬사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찬사로 저것의 가치가 충분히 평가되었다고 나는 보지 않는다. 이러한 헤아림이나 수사들은 저것이 지닌 무한한 가치를 높이 평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저것을 향해 바쳐진 어떤 수사들도 저것의 가치를 온전히 형언한 것은 없다. 저것은 물질과 정신 그리고 영혼이 어우러진 하나의 집약체이자 그것의 총화이다. 저것은 자연과 그 ‘건너각단’이라고 하는 특별한 공간, 그 공간을 성소로 삼았던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이 누렸던 시간들의 흔적이다. 그것은 한반도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문화의 표상이다. 또한 저것은 이어지는 문화의 규범이 되었으며, 오늘의 우리는 그 연장선의 끝 지점에 서 있는 셈이다.

나는 저것 속의 형상들을 도면화 하고, 그것들을 낱낱이 뜯어서 분해해 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형상 하나하나의 온전한 이미지를 제시하고자 하며, 그와 더불어 웃고 울었을 사람들의 삶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그러나 우선은, 그동안의 고고학적 발굴 과정에서 파악된 다섯 개의 파편들을 검토할 것이다. 그것은 토기에 시문된 사슴 형상과 압착된 그물무늬, 토루소와 멧돼지 소상 그리고 작살 등이다. 그것들은 대곡리 암각화와 직접적으로 관련은 없지만, 이 암각화가 제작 되었을 무렵의 사회상황과 시대 양식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생업 및 생활이기 등을 살피고 이해하는 데 더 없이 중요한 자료들이다.

나는 또한 이 암각화가 그려진 공간을 재조명해 볼 것이다. 대곡천과 태화강 그리고 울산만으로 이어지는 공간과 그 계곡을 따라 추적 가능한 시간의 흔적들, 인간의 흔적들을 더듬어 볼 것이며, 현대 테크놀로지의 도움을 받아 그 계곡의 구조를 부감해 보기도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이 유적지를 둘러싼 공간의 외적 현상들을 살펴서 정리한 후, 그것과 세계 각지의 바위그림 유적지에서 살펴지는 공간적 보편성과 직접 견주어서 동질성과 상이성을 검토해 볼 것이다. 그런 다음, 이와 같은 공간의 암면에 형상이 더하여 지면서 뒤바뀌는 성과 속의 변화 과정과 이후 이와 같은 공간이 어떤 형식으로 그 성스러움을 유지해 나가는지, 그 변이형에는 또 어떤 것이 있는 지 등을 살펴서 정리할 것이다.

이 암각화의 실체를 모두 측량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모두 담아낼 만한 큰 능력이 내게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곡천과 태화강을 통해서 바다로 드나들던 선사 대곡리 사람들이 목격하였을 바다를 재음미해 보고자 한다. 울산만에서 노를 저어 나갔던 바다와 그들이 기억을 더듬어서 만든 대곡리 암벽 위의 바다를 조망하면서 태화강 사람들의 집단적인 기억을 더듬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과연 그 바다 위에 떠다니는 고래는 태화강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일까? 이 암각화를 남긴 사람들은 그 바다를 통하여 무엇을 이루고자 하였을까? 그 바다 위를 헤엄치는 고래들은 제작 집단이 얻고자 하였던 욕망의 덩어리는 아니었는지 짚어 보고자 한다.

이미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도면 분석을 통하여 이 암각화 속에 층위를 이루고 있는 문화층을 나는 한 겹 한 겹 벗겨낼 것이며, 이를 통하여 이 그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는지 밝혀 낼 것이다.

그런 다음, 첫 번째 그림은 무엇을 형상화하였고, 그것은 한국 나아가 세계의 선사 문화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살펴 볼 것이다.

그것에 더하여 이 암각화 속의 제일 위에 그려진 샤먼 형상이나 전면에 고루 분포하는 고래들 그리고 포경에 여념이 없는 작살자비 등 개별적인 도상의 고형과 변형들을 추적하고 그 상징 의미를 살핀 후, 오늘의 시점에서 그는 누구이며 무슨 역할을 하여야 하는지 혹은 그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등을 논해 보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나는 이 암각화의 도상들을 통해서 문명의 여명기를 더듬어보고자 한다. 그림 속의 배와 작살 그리고 그물 등을 통하여 태화강 선사문명의 중공업단지를 복원해 보고자 한다. 또한 배를 만들고 첨단 어로구를 제작하였으며, 고래의 급소에 작살을 던져 꽂았던 선사태화강 사람들의 유전인자가 어떻게 오늘에 이어지고 있는지와 대곡리 양식의 특징, 그리고 개개 형상들의 상징 의미, 성소로서의 이 유적지의 의미 등을 차례로 논한 다음, 한국 정신문화 및 물질문명의 원상을 그려보고자 한다. 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그림 속의 이미지를 통하여 풀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형상 분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때로는 유사한 사례들을 추적할 것이며, 온갖 상상력과 비약들도 동원할 것이다.

이렇듯, 이야기보따리를 꾸리자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몰려온다.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이야기를 너무 성급히 내어놓는 것은 아닌 지 걱정도 된다. 그러나 저 참담한 몰골을 하고 있는 대곡리 암각화를 다시 보면서, 비록 설익었더라도 시도하지 않으면, 이런 이야기마저도 정리해 낼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보잘 것 없는 이야기보따리를 통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내 스스로가 대곡리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이 이야기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저 암벽 위에 각인된 원초적인 경험들의 표상을 보다 실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저 위대한 축복의 선물 위에 오물 따위를 뒤집어씌우는 일이 안 생기도록 지혜를 모으고 실천하는 시간이 앞당겨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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