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서울대학 선비가 국보위로부터 호출을 받다(2)
《제82화》 서울대학 선비가 국보위로부터 호출을 받다(2)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3.20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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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현 한국자원봉사포럼 회장)는 나에 관한 회고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서 이 총장(울산대, 한림대 총장 시절의 직명)이 서울대학교를 떠나게 된 배경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여기에는 약간의 비화 비슷한 내력이 있고, 거기에 나도 한 몫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당시 정부의 경제·과학심의회에서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에 의뢰한 연구 과제를 맡아 수행한 일 있다. 연구주제는 과외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터라 ‘한국교육의 진단과 처방’이라는 것이었다. 연구책임자는 그 때의 연구소장이었던 이홍구 교수, 부소장이었던 내가 연구 관리책임을 맡았고, 정원식 교수를 비롯하여 임종철 교수 등 14명의 교수가 참여하였던 대규모 연구였다. 여기에 이상주 교수가 교육학 전공자로서, 말하자면 실질적인 연구수행 책임을 지고 작업을 이끌어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 해 가을에 박정희 대통령이 비명에 세상을 떠나고 온통 난리를 겪은 뒤 이듬해에 가서야 그 내용이 지금도 우리 교육의 정상화에 크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그득히 담고 있다고 자부하는 총 1천68면의 두꺼운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는 1980년 여름에 정부가 주도하여 그 유명한 교육개혁을 단행하였는데, 여기에 이상주 교수가 대단히 중요한 일을 했었다는 것이 이 에피소드의 주안점이다.

교육개혁을 앞두고 KBS-TV에서는 대토론회를 갖게 되었는데, 거기에 우리 연구팀을 대표하여 내가 출연해 줄 것을 부탁해온 분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역시 우리 연구과제는 교육의 문제이고 교육학자 이상주 교수가 주로 운영하였으므로 그 분이 출연하는 것이 옳겠다고 사양하였고,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마침내 이 교수가 TV 토론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당시 TV 화면에 벌겋게 상기된 얼굴에다 그 큰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던 이 총장의 모습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그날의 그의 주장에 감동을 받지 않은 시청자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날이 계기가 되어 이 교수는 정부의 강권을 받고 대통령 교육문화 수석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던 것이다.

교수가 학교를 떠나는 일에 대해서는 상이한 견해들이 있지만, 이 총장의 이직은 학교로서는 손실이었으나 국가적으로나 대학교육의 견지에서나 매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그는 교육실천 현장에서 평소의 지론들을 모소 실현하는 데 정열을 쏟을 수 있었고, 장기적으로 보면 아마도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발전에 큰 획을 긋는 데 일조하였다는 칭송을 받아도 좋을 것 같다.…’

1980년 9월 어느 날, 청와대에서 호출이 왔다. 그 주 토요일 10시에 청와대로 들어와서 총무수석 비서관을 만나라는 내용이었다. 순간 나는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긴장되었다. 그래서 중요한 고비마다 나의 거취에 관해 의논을 드렸던 정범모 교수님을 찾았다.

‘선생님, 오늘 오전에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하는데 무엇인가 심상찮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에서 청와대의 어떤 보직을 맡으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요?’ 정리=박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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