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화》 서울대학 선비가 되어(2)
《제75화》 서울대학 선비가 되어(2)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3.06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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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에는 우리나라에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있을 정도로 인구팽창에 우려를 하고 있을 때였다. 산아제한을 위해 1971년부터 자녀 둘 낳기 운동, 1975년 10월에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피임기구를 보급할 정도였다. 인구문제 연구는 나의 전공영역과 관련이 많은 사회심리학적 접근의 연구이었다. 다음 연구 프로젝트로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호권 선생님이 주도하는 ‘완전학습’을 위한 학습자료 개발 사업이 대대적으로 되고 있었다. 셋째는 대기업 임직원의 성취동기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이 심리검사 개발사업과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 끝으로 유아교육관련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행동과학연구소에서 인구문제에 관한 연구책임자로 참여했고, 조금 지나서는 행동과학연구소 부소장으로 적극적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인구문제 연구 팀에는 이훈구(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최상진(전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 배정되어 있었다. 미국 측 연구파트너로는 James Palmore, James Fawcett, Beninger Devos,(버클리대 교수), Youngho Choi 등 주로 하와이대 교수들이 참가하고 있었다. 통계적 자료 분석을 위하여 비교적 자주 하와이 대학교 컴퓨터 센터를 방문하여 1회에 약 1개월 정도를 체류하며, 조교(하와이 대 박사과정 재학생(이근무, 홍사명, 민태정)의 도움을 받았다. 그 때 미국에는 SPSS(Statistical Program for Social Sciences)가 개발되어 대부분의 통계분석은 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수행하였다. 이때의 연구결과가 영어로 출판되고, 두 개의 저널에 발표되었다. 같이 연구했던 이훈구 교수와 최상진 교수의 도움은 상당히 많았다. 나 자신도 생일도 잊어버릴 만큼 연구에 몰두 하였었다. 당시 사회과학 분야에서 그렇게 흔치 않던 외국 저널에 논문이 발표되어 가슴 뿌듯했다. ‘Demography’ 와 ‘Psychologists’였다.

이렇게 인구문제에 관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방면의 전문가가 되어 국내외 여러 세미나에 자주 초청을 받았다. 네팔, 하와이 등을 방문하기도 하고 유네스코 국제회의에도 전문가로서 참석하였다. 이런 일들이 나의 교수로서의 연구 생활에 기본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으나 그래도 여기서 정리를 하고 싶은 것은 외국으로 회의차, 보고차 학교를 비우는 일이 있어도 다른 목적으로 비운 것이 아니고 항상 학생들과의 토론, 강의에 다음 4가지를 연결시켰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은 언제나(perennial) 직면하는 문제로서 1)교육이 외재적 가치에 중점을 둘 것이냐 내재적 가치에 중점을 둘 것이냐? 바꿔 말하면 교육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 즉 다른 사회제도(경제발전, 국가발전을 위한 교육의 역할)에 미치는 교육의 영향에 관심을 가질 것이냐? 아니면 교육자체의 목적 달성(자아실현)이나 교육 제도적 현상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냐? 의 양면적 문제이다. 지금도 교육학에서는 학자들의 관심정도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질 수 있다. 나는 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2)경제학, 정치학에서처럼 교육연구에서도 미시적 관점, 환원주의(Reductionism) 관점을 강조할 것인가? 아니면 거시적 관점, 전일적(Holistic) 관점을 강조할 것인가? 의 문제이다. 교육의 귀결점(환원 reduction)은 ‘학습’이고, 이 학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려면 학습자의 어떤 속성(Attribution)이 어떻게 처리(Treatment)되어야 하는 관심영역이다. 그러나 교육이 ‘사회’와 완전히 분리되어 행해지는 것이 아니므로, 교육의 사회학적 틀을 기초로 교육의 성공을 도모해야 하는 관점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전체적인 프레임을 정하고 그 안에서 서로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전일적 입장에서 연구하였다. 정리=박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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