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수필이다
이 글은 수필이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1.1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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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라면 정치, 사회, 교육, 대중적 문화, 과학 등등에 관한 최소한의 비평과 대안까지, 그것도 최대한의 객관성(근거 제시 포함)을 유지하면서, 해야 하는데, 다음 이야기는 너무나 주관적인 느낌에 조그만 철학적 수상(隨想)까지 덧붙인 글이라서 수필이라고 한다.

피천득의 ‘수필‘을 나의 입맛으로 번역하여, ‘수필은 날렵한, 그러나 소복한 여인이 주택가의 고요한 골목길을 걸어가며 혼자서 속삭이는 이야기를 글로 써놓은 것이다’로 풀이한다. 소복(素服)한 여인의 마음, 부모가 돌아가셨거나 남편이 죽었거나 그들에 대한 그리움과 못 다한 말들을 혼자서 속삭이는 마음의 극히 일부를 글로 써놓은 것이 수필이라고 상정(想定)한다.

그래서 칼럼은 신문의 오피니언난에, 수필은 문화난에 실린다. 물론 그렇지 않은 신문도 개중에는 있지만 이것을 탓할 것은 아니다. 둘 다 개인의 느낌과 생각을 내놓은 것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엄격할 필요가 없다.

태곳적 종족 번식을 위한 남·여 간의 짝짓기, 즉 육체적 관계를 ‘사랑’이 아니라 ‘육체적 만남’이라고 이름 해둔다.

육체적 만남은 서로가 배설(카타르시스)만을 목적으로 길게 잡아 약 1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배설이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헤어질 수 있는 만남이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육체적으로 만나고서, 그것은 ‘단지 호기심이고, 실험’이었을 뿐이라고 외치며, 다음 날 남자의 사무실에 들려 그 남자가 나를 대하기에 힘들 것 같아서 그저 눈짓만 하고 나왔다고 육체적 만남이었음을 항변한다.

그녀는 한 참을 잘 못 판단한 것이다. 이 남자는 평소에도 여자는 강둑과 같아서 한 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것이라면서 배설하고 싶을 때면 언제라도 이 여자를 비밀로 불러내어 배설을 하였다. 그 여자는 이런 육체적 만남에 변덕을 부린다. 실험이라고 자기변명을 하다가, 호기심을 충족시키다가, 배설을 마친 뒤에는 우울증에 빠지다가, 다시 싫증을 내었다가, 스스로 생각해도 갈피를 못 잡는다. 그 여자는 자신이 타고 나기를 이렇게 변덕부리는 여자여서 한 남자로는 살아갈 수 없고, 특히 자기와 인연을 맺게 되는 남자는 어떤 형태로든지 파멸에 이르렀음을, 불운의 바이러스를 전염 시켜왔음을 모르고 있다.

그 남자는 특정 종교의 상위 지도자로서 자신의 위선적 행동에 일말의 반성이나 여자에 대한 어떤 보상도 없이 그 여자로 인해 파멸에 빠진 것만 분(憤)해 하며 제 살길을 찾아 떠나버린다. 여자는 이런 지경이 된 것이 자기의 숙명적 불운 바이러스 때문인 것을 모르고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하면서 과거의 은인한테까지도 철면피로 대한다.

우리나라 가야금의 국보적인 모 교수는 5년 연상인 여류 소설가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어느 방송국에서 이 국보 교수를 인터뷰하러 가서, ‘사모님께서 5년 연상이라면서요?’라고 말문을 여니까, ‘자식 만들고, 낳고, 사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없어요’ 하면서 면담하러 온 사람의 말문을 닫고, 아래층의 부인을 향해, ‘어이. 여기 차 두 잔 주어요’라고 외친다.

이 외침 속에 가야금(남자)과 소설(여자)의 육체적 만남이 은근한 사랑으로 융합되어 울려 퍼진다. 그런 융합의 결실이 자녀들의 자기 주도적 발전, 즉 부모의 배경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수학자, 경영학자로서의 발전에서 보인다.

하마터면 이런 여자의 바이러스에 오염되어 파멸될 뻔 했던 어떤 못난이, 행운아(?)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를 읊조린다.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김소월)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금언이 언제나 우리에게 새 삶을 불러일으킬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벌써 1월이 반이 지났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를 다시 한 번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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