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혈동물
냉혈동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1.11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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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는 더운피 동물이다. 뱀은 찬피 동물이다. 더운피 동물의 배우(俳優)는 쉽게 울고 또한 쉽게 웃기도 한다. 찬피 동물의 배우는 좀처럼 울고 웃는 연기를 보이지 않는다. 연극무대에 서는 배우는 최소한의 더운피 동물이어야 슬플 때 쉽게 눈물이 나오게 된다.

아마도 우리들의 배우 중에서 전옥(全玉, 1911~1969)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얼마나 슬프게 잘 울었으면 그의 애칭이 ‘눈물의 여왕’이었을까. 물론 배우가 무대에서 자신의 연기에 취해서 연기하느라고 눈물을 흘려야 하느냐, 관객의 눈물을 나오게 하기 위해서 연기해야 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로 논의를 해야 한다.

하지만 눈물을 흘려야 하는 장면이 주어지면 눈에서 눈물이 나와야 한다. 이것이 안 되어 다른 배우들에게까지 고통을 주는 눈물 나오는 약을 뿌리게 하거나, 텔레비전의 경우에는 안약을 넣고 연기를 하면 제작 상 어려운 점이 많다.

찬피 동물의 배우로는 미국의 그레고리 팩과 험프리 보가트가 있다. 우리나라 배우도 있지만 이름을 거론하지 않는 이유는 다음에서 다룰 이야기가 찬피 동물, 뱀과 같은 인물의 냉정함, 간교함, 교활함, 무서움, 더러움 등등이 연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배우를 냉혈(冷血)동물 배우라고 하면 사전에 나오듯이, ‘비에 젖은 누더기를 걸치고 육교 위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보고도 아무런 느낌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으로 연상해버린다. 즉, 인정머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이다. 하얀 털과 앵두 빛 눈을 갖고 있는 토끼를 보고도 부드러운 느낌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은 까뮈의 이방인 같은 사람이다. 심지어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보고서도 아무런 느낌이 없으면 ‘털 없는 원숭이’이다.

돋보기는 더운피 동물, 온혈(溫血)동물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인정(人情)이 좀 넘치는 편이다. 지난해 12월 29일, 돋보기를 읽는 독자들을 간담회에 초청하였다. 돋보기 칼럼을 읽고 질문할 것이 있으면 질문하고,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으면 이것을 지적해달라는 것이었다. 진정 열린 마음으로 모여주기를 바랐다. 회비가 없는 점도 분명히 하였다. 20명을 초청하였는데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실제로 10명이 왔으나 모두 과거부터 돋보기의 성질을 잘 알고 있었던 개인적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즉, 돋보기가 자기 성질을 못 이겨 무슨 일을 저질러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반 강제적으로 참석해준 것이다. 이때의 참담함, 허탈, 실망, 허망, 공허, 절망, 배신, 모멸, 그리고 섭섭함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어떻게 보면 어느 연예인이 마약에 빠지게 된 심정,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 연예인이 마지막 공연을 끝내고 무대를 나서며, ‘내일은 뭐하지?’, 대하드라마의 마지막 회 녹화를 끝내고 뒤풀이에 가서 ‘내일은 어디로 모이지?’, 국가대표 선수들이 시합을 끝내고, 시합장을 나오는데, 해단식 날짜를 알려줄 때,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리게 되는 허탈감과 같은 것이었다. 독자에 대한 기대는, 유행가 가사처럼 ‘변치말자’, ‘무덤까지 가져가자던 약속’을 어기고 일주일도 안 되어 다른 남자의 품으로 들어간 여인의 변절, 변덕스러움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는 것과 같은 심정이다.

이상의 일들에서 냉혈동물은 첫째가 무덤덤한 모습을 보인다. 아예 처음부터 독자들에게 만나자는 제안부터 하지 않는다. 둘째는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자기 위안의 둘러대기를 하며 태연한 척 한다. 연말이라 모두들 바빠서 그랬을 것이라는 자위(自慰)이다. 셋째는 현실적 계산으로 마무리한다. 즉, 20명이 왔을 때보다 식사 값 지출이 반으로 줄었다는 계산이다. 끝으로 감성보다는 이성으로 판단하여 쓰는 칼럼에 소설 같은 감흥을 불러일으키려고 하지 말자라는 결론은 맺는다.

냉혈동물이야말로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는 말을 무시하며 사는 뱀들이다. 냉혈동물의 표본이 나의 둘레에 있어서 반면교사로 삼으려고 한 말이다. 돋보기는 체질적으로 더운피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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