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46년 개교한 부산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부산사범학교는 부산교육대학교 동창회로 연결된다. 그래서 부산교육대학교가 개교를 1946년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3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나는 이 기간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전인교육(全人敎育)을 받을 수 있는 행운이었기 때문이다.
교육계의 어느 동료가 아들의 전공분야를 이야기 하다가 변변치 못하다고 겸손해 하는 말이, ‘이 녀석은 하라는 컴퓨터 전공은 뒷전이고, 기타를 잘 치며, 노래도 가수 못지않게 잘 불러 노래자랑에 나가 상도 타고, 임기응변이 능하여 군대에서도 응원단장을 했어요. 못하는 운동이 없고, 바둑도 아마 5단입니다. 하여간 잡기(雜技) 대회에 나가면 특등할 것입니다.’ 라고 우물도 한 우물을 깊이 파야 물이 나온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오래 전에 ‘사구(師九:부산사범 9회)’, 부산사범 졸업 40주년 기념문집에 실었던 글을 보여주었다. 결론은 아들이 전인교육을 잘 받아서 그런 것이지 잡기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사범교육을 받은 3년간은 60평생 중에서 나의 정신생활을 풍요롭게 만든 가장 중요한 성장 기간이었다. ……인생행로란 흔히 우연히 결정되는 것이긴 하지만, 우연히 사범교육을 받은 것은 나에게는 대단한 행운이었다. …사범학교에서는 일반 고등학교 과목뿐만 아니라 심리학, 논리학, 교육사와 같은 교직과목과 미술, 음악, 무용과 같은 예술과목도 강조하여 가르쳤다. …나 자신은 농구부, 밴드부(취주악부), 문예부 등 3개의 취미서클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그 덕택에 나의 취미생활이 다양해졌고 정신활동도 풍부해졌다. 또한 사범교육이 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훌륭한 선생님들 때문이었다. …6.25 전쟁 중에 부산으로 피난 오신 여러 선생님들 외에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교육은 매우 수준 높은 것이었다. 아직도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의 가르침 덕택이었다. …3학년 때 담임이셨던 한희태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대학진학을 포기했을 것이다.……’ / 정리=박해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