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거짓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3.2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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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거짓 뿌렁’ 또는 ‘가짓말’이라고 칭하면 좋을 성 싶다.

추락 직전인 비행기의 승무원이 “승객 여러분 아주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을 뿐 입니다”라고 둘러댄다면 거짓뿌렁치고 도가 지나치다.

염문설에 휩싸였다가 결국 결혼에 돌입하는 연예인들도 ‘가짓말’의 명수다.

“그냥 우린 친구 사이일 뿐 이예요”라고 끝까지 버티기 때문에 관심을 더 한다. “이건 너 한 테만 말하는 건데”라고 속삭이며 건네준 친구의 거짓말은 이미 학급 전체가 알고 있는 사실인 수가 많다.

음식을 주문받자 마자 출발하는 집이 중국 음식점이다. 한참을 기다린 뒤 전화로 재촉을 하면 “벌써 출발했습니다. 곧 도착할 겁니다”라고 답한다. 모두 ‘하얀 거짓말’에 해당된다.

초등학교 시절, 학급 또래 중 한명이 학교에 납부할 ‘기성회비’를 분실해 교실이 발칵 뒤집혀진 적이 있었다.

근엄하기로 소문나 있던 담임선생님은 학동들 전체에게 눈을 감으라고 한 뒤 “자수하면 용서하겠다”고 선포했지만 쥐 죽은 듯 조용한 교실 안에는 불안스런 숨소리만 가득할 뿐 주인공이 나타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때 “제가 훔쳐 가서 다 써버려습니다”고 말하며 앞으로 나가는 아이 때문에 모두들 자기도 모르게 눈을 뜨고 말았다.

그 자수자는 공부를 잘 하는 편도 아니었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축도 아닌 그저 평범한 아이라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그러나 그 순간 은연중 느낄 수 있었던 사실은 그 애가 ‘저지른 짓’이 아니란 확신이었다.

절박하고 고통스런 분위기를 누군가 깨뜨려 주길 바라는 그 순간에 선뜻 나선 그 아이가 ‘비행소년’이 아니란 진실을 모두들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처하겠다던 약속과 달리 무지하게 벌을 받은 그 친구는 “그렇게 계속 있으면 애들이 점점 더 겁에 질릴 것 아니냐”며 ‘용감한 거짓말’을 한 이유를 설명했다.

맞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울던 그 구세주의 거짓말 덕택에 그 날 해가 저물기 전 학동들은 귀가 할 수 있었다.

‘음해성 거짓말’의 효시는 백제 무왕이 아닐까 싶다.

서동요에 나오는 구절을 보면 무왕이 왕자 시절 신라 선화공주를 꾀기 위해 흑색선전을 했음이 밝혀지고 있다.

‘선화공주가 밤마다 서동왕자를 만나러 몰래 궁궐을 빠져 나간다“는 소문을 노래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한 것이 바로 서동요다.

이 때 아이들에게 보상으로 나눠 준 것이 ‘마’였기 때문에 서동왕자를 ‘맛둥방’이라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결국 이 소문에 진노한 진평왕이 셋째딸 선화공주를 내 쫓자 이 기회를 포착한 서동이 그녀를 아내로 삼게 된다. 유언비어를 퍼트려 자신의 이익을 취한 대표적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4.9 총선을 앞두고 사정당국이 강력단속을 천명한 ‘흑색 거짓말’은 비인간적이란 요소가 더 짙게 작용한다. 선거 출마후보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것 중 하나가 사생활과 관련된 유언비어다.

특히 흑색선전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당사들이 가장 곤혹스러워 하는 것은 출처가 분명치 않기 때문에 해명할 상대가 없다는 점이라고 한다. 특히 선거전이 막판으로 치닿을수록 그런 경향이 뚜렷했던 것이 지금까지의 흐름이었다.

지역 대표성을 가질 국회의원 후보들이 정당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숨어서 ‘약점 흘리기’에만 집착한다면 이는 자신이 졸렬하고 편협한 정신의 소유자임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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