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집념의 시작(1)
《제50화》 집념의 시작(1)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12.3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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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의 회고담(懷古談)에는 ‘그때, 그일’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커다란 업적을 이룩한 대단한 사람일수록 그런 결정적 계기는 아주 작은 일일 경우가 많다. 그가 보통의 생활인으로 순탄한 삶을 보내었어도 여러 고비에서 큰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었던 데에는 결정적 계기가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불행한 일을 당했던 그 사람도 예상치 못한 아주 작은 일(변수)이 ‘나비효과’로 확대되어 나타난 결과 일 수가 있다. 이런 일련의 사례를 놓고 그냥 쉽게 운명적이었다고 회고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한테도 이런 운명적인 해후(邂逅)가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주장으로 나를 공부시키기 위해서 큰 도시로 가야 한다면서 부산으로 이사를 하였다. 경북 지역에서는 큰 도시라고 하면 대구를 떠올리는데 왜 경남의 부산으로 갔었는지 알 수 없다.

부산의 중앙초등학교 4학년으로 전학하였다. 친척도 없는 부산으로 이사를 하여 고생의 길을 자처하신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여러 면에서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머니는 시장의 한 곳을 잡아 여러 가지 독(질그릇) 장사를 하셨다. 아버지는 해방 후의 혼란 속에서 힘든 노동일을 하셨다. 나도 가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독 값을 받으러 멀리까지 갔다 온 일도 있어서 어머니께서 고생하고 계신 것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독자인 나는 보호 받기보다는 독립적이었고, 따라서 일찍 철이 들었었다. 아마 키가 커서 이런 일 저런 일들을 자주 시킨 것 같다.

어렵게 살던 4학년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께서 장날에 책 한 권을 사오셨다. 전과지도서였다. 나에게 불쑥 건네어 주시며, 학교공부하면서 참고하라고 하였다. 교과서에 없는 이야기와 설명이 많이 나와 있었다. 재미있게 읽고, 미리 예습한 격이 되어 학교에서 선생님의 질문에 나 혼자만 손을 들고 답하는 일들이 자주 생겼다.

지금의 단순 짐작으로 선생님께서도 이 전과지도서를 참고하고 있었지 않나 싶다. 하여간 나는 자연스럽게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반 아이들로부터도 공부 잘하는 아이로 알려졌다. 당연히 나는 더욱 공부에 재미를 붙였고, 학급에서는 뛰어난 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나에게 집념을 갖게 하고, 일찍부터 좌절하지 않는 의지력 훈련을 시켰다. 학급에 나보다 키가 작은 이OO가 있었다. 이 친구가 없었다면 일찍부터 한 번 마음먹은 일을 끝까지 밀고나가는 끈질김이 학습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친구가 주동이 되어 반에서 나를 왕따 시키기 시작했다. 전학 온 꺽다리가 공부를 잘하고, 선생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니 시샘이 생겨 심술을 부리는 것이었다. 텃새를 부리고 싶었을 것이다. 더구나 7, 8명의 급우들까지 동원하여 나와 어울리지 못하게 하였다. 아직 친한 친구도 사귀지 않아서 외톨이 되었다. 이것을 담임선생님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행동을 선생님께 이야기 할 수도 없었다. 비겁하게 고자질하는 학생으로 알려지는 것은 더 싫었다. 주먹질로 싸울 수도 없었다. 모범생이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 정리=박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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