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대학발전을 위한 전략과 실천(22)
《제33화》 대학발전을 위한 전략과 실천(22)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11.2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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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실험에서 똑같은 재료로 실험을 하여도 처리과정(throughput)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산출(output)이 전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바꿔 말하면 하나의 투입(input)이 어떤 경로(route, throughput)를 따라갔느냐에 따라 산출(output)이 전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비닐을 만드는 과정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비닐 가방이 찬 기후의 지방에 가면 깨져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월남에서 산 비닐 가방을 겨울에 김포공항에 내려서 검색대 앞에서 털썩 내려놓았다가 가방이 산산조각 나서 낭패를 당한 사람을 본 일이 있다. 비닐 만드는 공정이 달랐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이 모델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대학의 경영에서 throughput에서 잘 나타난다. 즉 최고 결정권자인 총장의 리더십이 어떠하냐에 따라 대학구성원들이 ‘우리대학의 제대로 된 발전에 적극적 참여하게 하는 것과 저희들끼리 잘 해보라 지의 냉소적 방관’으로 갈라질 수 있다.

투입(input)에서 우수한 교수를 선발하기 위하여 연고주의(緣故主義, 우리나라에서는 입학시험제도에서 맺어진 고등학교 연고주의가 극심한 편에 속함)를 철저히 배제하고 학문적 업적주의와 능력위주의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였어도 처리과정(throughput)단계에서 다른 변수가 작용하여 연고주의가 발생하게 되면, 그 대학은 경고등이 켜진 것과 같게 된다. 특히 총장이 이런 연고주의를 아무리 배제하려고 하여도 교육·연구 일선의 교수가 이런 연고를 악용하러들면 통제가 어려지고, 그 영향은 연쇄반응으로 확대된다.

나는 연고주의를 의도적으로 배제하였으나 연고가 되는 당사자가 먼저 연고주의로 오해 받을까봐 먼저 몸을 사려 인사에 어려움을 겪었던 일이 있어 소개하고 싶다. 이제는 정년퇴임한 안정수(화학과)교수와의 인연이다. 그는 내가 총장으로 부임하기 전, 울산대학교가 개교한 1970년부터 울산대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나와 연고(緣故)가 되는 것은 그와 내가 같은 대학을 나왔다는 것뿐이었다. 전공학과도 전혀 다른 엉성한 연고였다.

이렇게 희미한 연고의 안정수 교수를 1990년 초대 교육대학원장에 임명하려는데 안 교수는 극구 사양하는 것이었다. 사양하는 이유에 타당성이 부족한 것을 아무리 지적하여도 안정수 교수는 한 달이 넘도록 사양하여 결국은 교수들이 교육대학원장 추대에 관한 투표를 실시하게 하였다. 전원 찬성하면 수락하라는 강요로 결국은 원장이 된 일이 있다. 다른 교수가 한 표로 추대되었는데 이것은 안정수 교수가 추대한 것이었다. 그러고서 안정수 교육대학원장은 문교부(교육부)를 찾아 학과증설에 적극적으로 나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씁쓸한 기억은 대학의 중요 보직을 놓고 맡기고 싶은 교수는 대개가 겸손하게 사양을 하고 그럴 만한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교수들이 자리에 연연하는 점이다. 맡겨주시면 열심히 하겠다는 요구형이 있는가 하면, 눈도장(?)을 열심히 찍으며 총장이 시켜서 했노라고 딴청을 피울 사람, 은근히 이제는 내 차례인데 어떻게 하겠습니까로 압박을 해오는 사람들, 정말 다양한 인사의 단면이 교수 사회에도 나타난다. / 정리=박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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