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대학발전을 위한 전략과 실천(20)
《제31화》 대학발전을 위한 전략과 실천(20)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11.1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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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대학교 정문으로 나가는 좁은 길을 4,50명의 운동권 행동대원들이 막고 있었다. 연좌농성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먼발치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정 명예회장께서 막 학교를 나가시려다 이 모습을 보시고 차에서 내렸다. 학생들이 무슨 일로 저러느냐며 직접 만나보시겠다는 것이었다. 명예회장께서 성큼성큼 학생들 앞으로 가서 학생들의 터무니없는 주장과 요구를 다 들어주고 난 뒤, ‘자, 다 들었다. 여기 길에서 더 이야기 할 수 없다. 공부 잘하는 학생 대표가 현대중공업 이사장 사무실로 와서 차근차근 이야기 해.’하며 매듭을 짓고 농성장을 나가셨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고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마련한 아산 도서관 준공식이었는데 학생들을 저렇게 놓아둔,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총장으로서의 자괴감 때문에 학교에 더 있을 수 없었다.

총장실에서 일부 보직 교수들과의 걱정 어린 향후 수습책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이런 상태로는 더 일을 할 수 없다. 정 명예회장의 총장으로서의 나에 대한 기대에 한참을 못 미치는 일이 발생했으니 더 이상 울산대학교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고 자리를 물러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고 천명한 뒤 총장실을 나왔다. 학생들이 너무 야속했다. 일을 하려는 나의 진정성을 몰라주는 그들이 섭섭했다.

울산대학을 떠나려는 이 마음에 어찌 총장 관용차를 타겠는가. 집에서 쓰고 있는 쏘나타를 직접 운전하여 서울로 향했다. 지금 그때의 착잡한 심정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운전을 하고 서울 집까지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을 집사람이 운전을 하였으나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다른 곳에 정신을 집중하려고 어마간은 내가 운전을 하였다. 사실 기(氣)가 막히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나의 특기라고 할까, 낙천적 성격이라고 할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금방 잊기로 했다.

다음 이야기는 당시 울산대학교 공과대학장으로 이상주 총장님을 가까이에서 모시고 있었던 이수동 현재 울산과학대학 총장을 면담하고 채록한 내용이다. 이수동 공대학장이 총장이 서울로 올라가버렸으니 부총장(윤석길 재료공학과 교수)을 만나 비상체제로 일을 수습해야 하겠다고 의논을 하였다. 손수 운전하여 올라간 이상주 총장이 우리가 말린다고 돌아올 리 없으니 일종의 사절단을 구성하여 서울의 정 명예회장을 뵙고 사과를 드리자는 결론을 맺고 대표들을 모았다.

원로 교수로 이도원(수학과)교수, 부총장(윤석길 교수), 공대학장(이수동 교수), 학생대표로 총학생회장(이영창)이 서울로 정 명예회장을 만나러 갔다. 이도원 교수, 부총장, 학생회장 세 사람이 정 명예회장께 일이 이렇게 된 것에 사과를 드리고, 이상주 총장이 책임을 통감하고 명예회장을 뵐 낯조차 없다고 서울에 칩거 중이라는 사실을 보고 드렸다. 정 명예회장은 예의 담담한 표정으로 ‘뭐 그런 일로. 이 총장 잘 모시고 일해요.’라는 짧으나 우리를 안심시키는 커다란 울림이 회장실에 퍼졌다.

학교로 돌아온 부총장 일행은 다시 의논을 하였다. ‘언짢은 마음으로 학교를 나선 분이 전화 몇 마디 하였다고 돌아올 수 있겠느냐. 우리가 모시러 가자.’로 결론을 맺고 이수동, 김재성, 이종화 교수 세 사람이 총장 관용차로 유성의 관광호텔로 찾아갔다. 그때 이상주 총장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주관하는 대학평가의 책임자로서 유성에서 세미나 특강을 하고 있었다. 특강을 마치고 나오는 우리 일행들이 뜻밖에 나타났다. 일견 놀래는 이상주 총장을 총장 관용차로 모시고 와서 거의 납치한 상태에서 울산으로 모셔왔다. 총장이 서울에서 운전하여 타고 오신 쏘나타는 학교 직원이 서울로 운전하여 보내드렸다. 눈물 벅찬 일이었다. / 정리=박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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