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대학발전을 위한 전략과 실천(16)
《제27화》 대학발전을 위한 전략과 실천(16)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11.0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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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교육대학원의 설립이었다. 1988년 당시에는 울산지역에 교사양성과 교원재교육 연수를 위한 사범대학 또는 교육대학이 없었다. 따라서 새로운 교사를 양성할 수 있는 어떤 방안과 교사의 직무연수, 승진자격연수를 위한 시행과정에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었다. 대개는 부산이나 창원, 경우에 따라서는 대구로 장기 출장을 가야하는 일들이 생겼다.

여기에 서울의 서강대학과 같이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이 없는 곳에서도 교육대학원을 설립하여 이러한 서비스를 지역사회에 할 수 있음을 파악하고 총장은 교육부를 찾기 시작하였다.

당시 교육부의 분위기는 이상주 총장이 언젠가는 교육부의 수장으로 오실 분이라는 예측이 있었는데다가 이런 일의 행정적 절차에서 총장은 ‘실무자 먼저, 고위층 다음’의 소탈하고 서민적이며 겸손한 접근 방식을 택했다. 총장공관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공업탑 근처의 아파트에 살면서 울산대학교 교육대학원 설립을 추진하여 1989년 설립인가를 받고 1990년 3월에 개원하였다.

넷째는 이상주 총장이 부임하기 전(1987년 10월 23일)에 의예과 신설 허가가 나서 1988년 3월에 의예과가 신설되고, 1990년 의예과를 수료한 학생들이 처음으로 의학과에 입학하였다. 이 과정 역시 총장이 아파트 전셋집에서 추진한 일의 결실이었다. 특히 의과대학의 교육방법이 당시로서는 우리나라에는 처음 도입되는 통합교육과정으로 ‘실제 임상에서 기초 및 임상지식을 활용하여 감별진단 및 문제해결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이 새로운 시도를 이상주 총장은 특유의 추진력으로 교수들의 모든 세미나, 워크숍, 소그룹 교육, 모의수업 등을 마치고 1990년 3월 1일의 수업에 지장이 없도록 하였다.

다섯째는 신임교수의 채용절차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하기 위하여 크게 3단계로 나누어 시행하고, 이 과정에 외부의 비공식적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이상주 총장 자신이 과감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1)모집공고: 주요 일간지를 통한 공개모집. 2)분야별 전형위원회의에서 후보자 3∼4인 추천. 3)학과전형위원회에서 이 중에서 2명을 대학전형위원회로 추천. 4)대학전형위원회에서 1인을 최종 결정. 그 구성은 부총장, 교무처장, 기획처장, 관련분야 학장 2인, 중진 교수 2인. 계 7인으로 해당 학과장의 추천 배경설명을 듣고 결정함. 5)마지막 면접에서 총장, 부총장, 교무처장, 해당 단과대학장이 최종면접을 통해 채용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였다.

이런 절차를 밟아가는 동안에 외부의 입김이 들어오면 오히려 탈락 시키는 과단성을 이상주 총장이 몸소 보여주었다. 채용과정에 불미스럽게 탈락된 본인의 명예에 해당되는 것이어서 여기서는 그와 관련된 일체의 내용을 밝히지 않는다. 초점은 이상주 총장이 얼마나 줏대가 있고, 결단력이 있으며, 분명 했었는가를 알려주는 것이다. / 정리=박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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