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상인 담합 척결 그 이후
중간 상인 담합 척결 그 이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10.2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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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주문한지 채 3개월도 못돼 태광그룹이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7월 30일 대통령의 언급이 있고 난 뒤 기업총수가 직접 나서 중기와의 협력체제 구성을 독려했던 삼성이나 현대차와 달리 무반응으로 일관했던 태광이 검찰의 집중조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13일 배추값이 폭등하자 대통령은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생필품 값 담합 여부를 철저히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18일에는 중간 상인의 담합이나 독과점으로 농민이나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농림수산식품부에 지시했다.

지난 7월 말부터 시작된 이런 일련의 조치들을 보면 MB의 서민경제 살리기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주된 조치내용들이 청와대 참모진이나 외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대통령 자신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란 점이다. 성장과정과 대기업 임원 시절을 통해 느꼈던 사회적 모순을 개혁 주제로 삼고 있다고 봐야 한다. 서민과 약자를 대상으로 이익을 취해왔던 조직체들이 대통령의 다음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상여금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70년대 초 반이다. 그러나 금융권은 그 보다 훨씬 앞선 50년대 후반부터 상여금과 휴가비를 받았다. 잘 나가던 금융권이 된 서리를 맞은 것은 5·16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다. 전방(前方) 사단장 시절 장성(將星)인 자신보다 은행원이 더 잘 산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박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금융권을 대수술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50년대 후반 대졸자들이 선호하는 직업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던 은행직은 박대통령이 집권하는 동안 줄곧 비인기 직종 군(群)에 밀려 나 있었다.

한국은행이 어려운 중소기업에 지원하라며 연 1.25%의 저리(低利)로 내려 보낸 중소기업 지원금 1조9천19억원을 시중 은행들이 금리 6.25%~6.85%를 적용해 중소기업에 대출하고 그 차익을 챙긴 사실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지원자금 약 2조원을 중소기업에 풀어 5%의 차익을 남겼다면 약 1천억원의 돈 이자가 은행 잇속으로 챙겨진 셈이다. 한국은행 울산본부도 시중 은행을 통해 신성장동력산업과 관련된 중소기업에 지원자금 2천800억원을 풀었다. 똑 같은 금리가 적용됐다면 울산지역 시중 은행들도 약 140억원의 차익을 남겼다는 계산이 나온다.

신용도 7등급인 울산시민이 지역 은행을 이용해 500만원을 대출받으면 연 14.18%의 금리가 적용된다. 단 하루라도 이자 납입이 늦어지면 연 21%의 연체료를 물어야 한다. 대부업에 규정된 이자율 상한선인 연 49% 이상의 고금리를 사취한 금융기관도 지난 2월 적발됐다. 12개 은행과 22개 저축은행을 포함, 전국에서 총 66개의 금융회사가 상한선을 웃도는 금리를 받아 106억원을 부당 징수한 사실이 금융감독원에 의해 밝혀졌다.

은행권이 시행하고 있는 현금카드 제도는 금융권으로부터 현금을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현금을 넣어두고 필요할 때 마다 인출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오후 7시 이후에 이 카드를 사용하면 자신의 돈을 가져가면서도 500원의 수수료를 문다.

일부 개선되긴 했지만 끼워 넣기와 양편 넣기도 여전하다. 대출 및 연체이자를 계산하면서 대출·연체 발생일과 이자납입 일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 양편 넣기다. 토요일이 납부기한이면 그 다음 주 월요일을 납부기한으로 보고 화요일부터 연체이자를 계산해야 하지만 일요일부터 연체 이자를 물리는 것이 바로 끼워 넣기다. 국내 12개 은행들은 이런 수법으로 2005년부터 2009년 6월까지 모두 103만 5천여 건에 대해 125억4천만원의 연체이자를 부당하게 징수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8년 11월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주문한 바 있다. 그 당시 금융권엔 영세상인과 중소기업에 대해 유동자금을 방출하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대기업과 금융권은 이에 대해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2년이 채 안된 올해 7월, 다시 상생을 주문했으나 여전히 반응이 없자 태광그룹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번 태광사태는 서민, 약자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금융권이 향후 나아갈 바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제시해 주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 정종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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