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세상에 다리’될 사람
‘험한 세상에 다리’될 사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7.12.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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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청년의 실업 이야기 힘빠진 청년들에게 희망 주자
짤막한 가상의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 보자.

“고등학교를 마친 뒤 지방대학 금속 공예과에 진학했다. 수도권 지역으로 가고 싶었지만 농사일로 2남 1녀를 뒷바라지 하는 부모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단념했다. 대학 2학년 때 군에 입대해서 복무를 마치고 졸업할 쯤에 전공과 관련된 사업을 해볼까 맘먹었다.

사업 자금을 구하기 위해 창업 지원센터 등을 찾아가 봤지만 보증인이나 담보가 없으면 결국 불가능 했다. 할 수 없이 아버지로부터 500만원을 지원 받았다. 300만원은 서울 변두리 반 지하방 보증금에 썼고 나머지는 창업 준비금으로 사용했다. 짧은 밑천으로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시작한 사업은 실패만 거듭했다. 별 다른 수입 없이 수개월을 보내는 사이, 지하방 월세가 몇 달치 밀리게 되고 보증금에서 까먹어 100만원 밖에 남지 않았다.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야 할지 그대로 서울에 남아야 하는 건 지 막연하기만 하다.”

많이 들어서 익숙한 이야기 인 것 같지 않은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힘없이 걸어가는 우리 아이들 모습이 이것이고 골목 끝집 영미네 제대한 막내 삼촌 얘기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

평소 쉽게 듣고 지나쳤던 이 말이 요즘처럼 가슴에 와 닿은 적은 없다. 총기 탈취 용의자 조 모씨에 대한 기사를 읽고 난 뒤, 범인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그 위에 겹쳐지는 ‘이태백’이들 모습 때문에 잠을 설친다.

살인범은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죗값을 치러야 한다. 더욱이 병역의 의무를 다 하고 있는 귀한 집 자식을 아무 이유 없이 해쳤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 범인의 주변 얘기를 신문 기사에서 읽으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물이 핑 도는 것은 그 범인에 대한 연민 때문이 아니다.

착한, 너무도 성실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의 젊은이들 때문이다.

“전기가 고장 났다고 하면 묵묵히 전구를 갈아 끼워줬다.” “지난 8월부터 월세가 밀리기 시작했는데 방을 비워 달라고 하자 몇 개월 만 더 있게 해달라고 사정했다.”는 집 주인의 말. “전과는 전혀 없다.”는 수사관의 설명에 이르면 우리의 좌절감과 무기력함에 말을 잇지 못한다.

그 살인범이 받아야 할 죗값의 절반은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행복할 땐 다른 사람의 고통은 전혀 모른다. 자신이 괴로워지면 잠시 아픔을 인식하다가 편안해 지면 타인의 고통을 다시 잊어버리는 인간의 얕음 때문에 죗값의 절반은 책임이 있다.

모 재벌이 수천억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 때문에 검찰이 수사에 나서고 있다.

연말연시를 맞아 울산 지역 연회장과 호텔, 식당의 예약률이 100%를 돌파했단다.

힘없이 우리만 바라보고 있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위해 이 ‘험한 세상에 다리’ 될 사람은 진정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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