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 되는가
역사는 반복 되는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9.2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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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7월 청국 북양함대 제독 정여창이 이끄는 독일제 장갑 전함 정원, 진원 두 척이 호위함 13척과 함께 친선방문차 일본 동경만(灣)에 닻을 내렸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무기인 회전식 포탑을 장착한 이 신형 군함을 보고 일본인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친선이라곤 했지만 사실상 청국의 무력시위이자 해군력 과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일본을 더욱 자극한 것은 나카사키, 고오베, 요코하마 등 일본의 주요 항구를 돌면서 청국 수병들이 행한 오만 방자함이었다. 기항하는 항구마다 청국 수병들이 술에 취해 소동을 벌이고 유부녀를 희롱하는 바람에 일본열도는 ‘굴욕 친선’ 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 여론은 ‘오늘을 잊지 말자’면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그 때부터 일본은 한해 예산의 25%를 군비 증강에 쏟아 부었고 정확히 3년 뒤인 1894년 7월23일, 일본해군은 황해에서 이 두 전함을 격침시키고 청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19세기 말 한반도를 둘러싸고 중국, 러시아, 일본이 벌였던 각축전을 아는 사람이면 위의 사실 정도는 웬 만큼 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이 청일 전쟁에 깊숙이 개입돼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많다. 청일 전쟁 당시 일본은 자력으로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었다. 당시 일본 한해 예산이 7천만엔 인데 1894년 7월부터 95년 4월까지 불과 9월만에 투입된 전쟁비용만 무려 2억엔에 달했다. 미국은 이런 일본에 실탄 10만발을 지원하고 미국 내 유대계 은행가를 동원해 전쟁 비용을 지원하도록 유도했다.

미국이 일본을 앞 세워 청국을 제지한 이유는 간단하다. 1840년 아편전쟁으로 청국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여전히 잠재력을 지닌 대국(大國)으로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국은 1860년부터 국가기구를 서구화하고 군대를 서양식으로 근대화하는 양무운동을 전개했다. 이런 근대화를 통해 창설된 청국 북양함대는 일본해군력을 압도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미국은 이런 중국이 결코 달갑지 않았다. 동양권에서 서방을 압도하는 세력이 나오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그러한 대(對) 중국 정책은 최근까지도 계속돼 왔다.

최근 일본은 남지나해에 있는 센카쿠라는 열도를 두고 중국과 영토 분쟁에 휘말려 있다. 현재 일본과 관련된 영토분쟁 지역은 세 곳이다. 러시아와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북방도서와 한국령 독도, 그리고 중국과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센카쿠(댜오위다오)다. 이 중에서 일본이 실효적 점유를 행사하고 있는 곳은 센카쿠 하나 뿐 이다. 센카쿠 열도는 원래 청국령이었으나 1895년 청일전쟁 직후 일본이 자국 영토에 편입시켜 버렸다. 2차대전 종전 후 미국이 오키나와 기지를 접수하면서 센카쿠도 함께 귀속시켰다. 그러나 1972년 미국이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그보다 1년 전인 1971년 중국과 대만이 각각 센카쿠(댜오위다오)가 자국 영토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으로부터 오키나와를 넘겨받은 일본은 1951년 연합국과 맺은 종전 조약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근거로 센카쿠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며 순시선을 파견해 주변해역을 감시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8일 중국 어선이 센카쿠 열도 해역을 침범했다며 일본 순시선이 어선을 압류하고 중국 선원을 구속했다. 중국은 센카쿠가 자신들의 영토임을 주장하며 선원과 선박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했다. 일본은 지난 13일 선원은 석방했지만 선장과 선박은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러자 중국은 경제 및 고위 당국자 교류를 전면 중단하겠다며 강공을 펼쳤고 일본은 25일 선장을 송환조치 했다. 그러자 일본 야당을 비롯한 우익진영에서 ‘굴욕 외교’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마치 1891년 북양함대 수병들이 일본 항구에서 행패를 부리자 일본 열도가 들끓었던 것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중· 일 영토 분쟁이 사실상 일본의 패배로 끝났지만 일본 여론은 차분한 반응으로 사회적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다. 그러면서 중국 위안화 절상 문제로 심기가 불편한 미국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 동안 미국과 소원한 관계에 있던 간 나오토 일본 총리 진영에서는 벌서부터 ‘미국과의 동맹 복원’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중이다.

1904년 러일 전쟁을 기화로 독도를 자국령에 편입시킨 일본이 실질적 점유를 행사하고 있는 우리에게 경제교류 중단을 무기로 강공 외교를 펼쳐 온다면 미국은 과연 어느 쪽에 설까.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요즘처럼 찜찜하게 느껴진 적도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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