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풍광 간직한 깔끔한 아스팔트로
아름다운 풍광 간직한 깔끔한 아스팔트로
  • 김기열 기자
  • 승인 2010.09.09 2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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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대안마을~신흥사~기령공원 잇는 4㎞ 구간
임진왜란·6.25 등 나라위해 사용된 유용한 이동로
▲ 올해 초 대안마을에서 신흥사까지 비포장길이 아스팔트로 말끔히 포장되면서 옛 산길의 묘미는 사라지고 자동차로도 쉽게 올라갈 수 있다.

>43 < 북구 대안동 신흥사 가는 길

여름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산행하기 좋은 가을 시즌이 성큼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북구 대안동 함월산 자락에는 가족들과 가볍게 산행을 즐기며 울창한 원시림을 만끽하고 유서깊은 사찰도 둘러볼 수 있는 길이 있다.

북구 정자삼거리에서 산하해변과 신명교를 지나 신명천을 따라 북구 대안마을로 들어서면 마을회관과 함께 좌측으로 조그만 다리가 보인다.

대안마을에서 농로를 따라 2km쯤 더 올라가면 아스팔트로 깔끔하게 포장된 신흥사 길이 시작된다.

입구에서 신흥사까지 이어진 1.2km 구간의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걸어가면 도로 아래로 시원한 계곡과 폭포,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신흥사 계곡은 작고 수량도 풍부하지 않지만 아주 깊은 골짜기와 큰 나무들이 울창하게 형성돼 있어 한 낮에도 시원한 느낌이 든다.

계곡을 따라 형성된 크고 작은 폭포와 소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기에 적당해 여름철 가족단위 피서객들이 무더위를 식히기에는 안성맞춤의 장소다.

올해 초 대안마을에서 신흥사까지 비포장길이 아스팔트로 말끔히 포장되면서 옛 산길의 묘미는 사라지고 차로도 쉽게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산행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즐기려면 1시간 정도 걸리는 신흥사까지 걸어서 올라가는 것을 권하고 싶다.

신흥사를 지나 기령공원까지 이어진 약 1km의 가파른 고갯길은 사람의 손때가 거의 묻지 않은 원시림으로 뒤덮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지만 신흥사가 처음 창건된 뒤 무예를 닦던 승려 100여명이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만리성과 기박산성을 쌓을 때 이 길을 통해 돌을 날랐다고 전해진다.

또 임진왜란 때는 지운스님이 이끄는 승병들이 기박산성에 주둔한 의병들을 지원하기 위해 군량미를 매고 다녔던 유서깊은 길이다.

▲ 울산시지정문화재자료 제9호 신흥사


왜구의 잦은 침입에 대폭 축소된 규모

북구 대안동 함월산에는 울산시지정문화재자료 제9호(1998년)인 신흥사가 자리 잡고 있다.

신라 문무왕 13년(673년)에 명랑조사가 창건한 절이다. 일설에는 창건연도가 40년 앞선 635년(선덕여왕4년)이라는 설도 있으며, 이름도 건흥사로 불렀다고 전해진다.

신흥사는 창건 당시 면적이 함월산 일대 50만평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방대했다고 전해지나 이후 왜구의 침입으로 여러 차례 방화와 약탈을 당하는 시련을 겪으면서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그러나 일제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사방 100리가 절의 소유였다고 전해질 정도로 꾸준히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신흥사는 호국불교를 지표로 삼은 사찰 답게 문무왕 16년(678)에 신라가 만리성을 쌓는 동안 승병 100여명이 이 절에 숙영하면서 무술을 연마해 왜구의 침입이 있을 때면 만리성과 기박산성에서 관군과 함께 물리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임진왜란 초기 조선관군이 힘없이 무너지자 울산지역 의병들이 왜적에 대항하기 위해 기박산성에 포진했을 때도 신흥사는 의병과 관군에게 군량미를 제공하고, 병력을 훈련시키는 장소도 내주었다.

그러나 정유재란과 숙종 때 발생한 화재로 대부분 전각이 소실됐으며, 이후 수차례 개축을 거듭하다 6.25전쟁 당시 남부군 활동지로 사용되면서 폐허가 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최근 1990년 이후 지은, 현단 스님들이 복원을 시작해 대웅전과 칠성각, 산령각, 요사채 등이 남아있다. / 글·사진=김기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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