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백발의 노장기자를 더 많이 보고 싶다
[특별기고] 백발의 노장기자를 더 많이 보고 싶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8.1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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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은퇴한 헬런 토마스는 미국 백악관을 49년째 출입했던 기자였다. 마지막 현역 나이는 90세였다. 소설가 김훈은 원래 기자였다. 30년 가까이 언론계 밥을 먹었다. 2003년 퇴직하기 전 한겨레신문 사회부 기동취재팀으로 경찰서를 출입한 기자였다. 박수택 SBS 환경 전문기자는 올 초 논설위원 발령 전까지 26년 동안 현장을 누볐다. 백지연 전 앵커는 아직도 백발의 인터뷰어가 꿈이라고 한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일본에는 현장을 뛰는 6,70대 노장들도 많다. 유럽의 경우 데스크 맡기를 피하는 중년기자들이 더 많다고 한다. 관리자보다 현장에서 평기자로 더 뛰기를 원한다. 흔히 ‘기자가 현장에 가는 것은 물고기가 물을 찾는 것과 같다.’고 한다. 대개의 기자는 할 수만 있다면 현장에서 끝까지 뛰고 싶어한다. 회사가 허락한다면…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울산은 또 어떤가?

5,60대 기자가 현장에 나타나면 승진도 못한 무능한 기자나 주책스런 늙은이로 쳐다 볼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현장을 누비는 노장 기자들을 찾기란 정말 어렵다.

내 주위만 둘러봐도 그렇다. 나도 그랬지만(?) 40대 중반만 되면 관리자로 의자에 파묻혀 지낸다. 어쩌면 자의 반 타의 반 현장을 떠난 건지도 모른다. 어떤 언론사는 후배가 승진하면 선배를 다른 국으로 전보하거나 아예 퇴사시킨다고 한다. 이는 계급 중시와 자리 지향이 강한 우리 언론계의 잘못된 관행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 오래 머무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분위기 말이다.

나의 신문과의 인연은 중학교 2학년 때 본 백지광고인 동아일보가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신문읽기도 어언 30년이 넘었다. 그렇게 시작된 신문 읽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더욱이 전국지 보다 얇은 지역신문을 더 정독한다. 직업적 습관이겠지만 단 하루도 지역신문을 읽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다.

이런 습관을 가진 필자는 최근 한 지역 신문을 읽는 재미에 빠져있다. 이 신문을 읽는 즐거움은 한 노장기자의 발품 기사다. 그의 기사는 독자의 흥미까지 더 해 매일 글 읽는 안복을 덤으로 얻고 있다. 거대 담론보다 작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주류나 강자보다 소수와 약자의 눈물을 닦아 주는 현장취재는 후배 언론인들을 반성케 한다. 세밀한 현장 묘사나 ‘태화강 낚시’와 같이 울산 발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기도 한다. 그의 기사에서는 현장을 누비는 노장의 땀 냄새가 오롯이 배어 나오고 오래된 언론인의 경륜이 묻어난다.

신문을 읽으며 기사를 오려 스크랩 해 본 지가 그 언젠가? 방송을 하면서 신문기사를 인용하거나 취재꺼리로 재활용해 본 지가 그 언젠가? 시청이나 시의회 기사도 책상에서 자료 받아 쓴게 아니다. 다시 한번 확인하고 발로 뛰어 현장에 가 보고 쓴 흔적이 느껴진다. 사소한 인물 인터뷰에도 그의 휴머니즘과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묻어난다. 그렇다고 그의 기사가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언론 본연의 매서운 비판과 아픈 지적이 주를 이룬다. 하나를 써도 발로 뛰고 현장을 확인하고 오래 머무르다 글을 쓴다. 무엇이 기사인지를 알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기에 그런 기사를 독자에게 선물한다. 그러기에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독자는 세상과 호흡하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도 한다. 때로 그의 칼럼은 문향만리(文香萬里)란 말을 되새기게 한다. 좋은 글의 향기는 수많은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말이다.

그 노장 기자는 30년 넘게 현장을 뛰고 있는 김정주 기자다.

다시 질문해 보자.

나이 든 기자의 경륜은 정말 쓸모가 없는가? 수십년 쌓은 노하우나 다양하고 깊은 경륜들은 전문능력이 될 수 없는가? 아무리 고참기자라도 현장에서 뛰고 싶은 욕망이 없을까? 현장 경험이 많은 기자와 좋은 대학 나온 젊은 기자 중에서 독자나 시청자들이 누구의 기사를 더 신뢰할까?

독자로서 마지막 한 마디,백발을 휘날리며 현장을 누비는 더 많은 노장 기자를 보고 싶다.

/ 김잠출 울산MBC 라디오 시사매거진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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