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기
해동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7.21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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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몇 마리가 한 줄로 날아서 임진강을 내려왔다

기러기들의 아랫배가 강바닥에 스치고 닿았다 강바닥에서 얼음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놀 들고 전신이 물들자 여자는 말없이 누워주었다

훌훌 벗더니 제 몸 위로 강을 끌어올리고는 얇다랗게 말갛게 유리판 같이 얼었다

여자는 가린 것 없이 들여다보였지만?

어떡할까.

나는

망설이다 말았다

내가 다 벗고, 맨살로, 놀빛 비낀 겨울강의 살얼음판 위에 엎드릴 것인가



강이 녹고 여자도 녹아서 흠뻑 젖을 무렵 햇살 환한 날 다시 찾아가서, 무겁고 울퉁불퉁한 내 몸을 보여주고

한 번 더 누워주겠느냐고 물어보려 한다

<해동기- 위선환>



감상 /유현숙

방금 떠난 임진강역에는 초가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자리가 많이 비어서 쓸쓸한 경의선 열차에 앉아 시 한 편을 읽는다.

이 시편의 임진강은 그저 순연하다. 포성과 울부짖음이 흐르는 강이 아니다. 기러기떼가 한 줄로 날아서 내려오는 정연한 강이다.

그 기러기떼의 뱃바닥에 스치기만 해도 부서질 만큼 강바닥은 얇은 살얼음에 덮여있다.

그리고 놀이 물 들고…그것이 분명 아픈 사랑의 빛깔이었을 놀빛에 전신이 물들면서,

여자는 옷을 벗고 살얼음 깔린 임진강을 끌어다 덮었다. 유리판 같이 판판하고 말간 살얼음 아래로 여자가 全裸로 누워 준 것이다.

‘누워 주었다’ 는 건 배려와 봉헌이 따른다. 그건 사랑과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전라의 여자가 한 장의 리트머스 종이가 되어 서서히 노을빛으로 젖는 이 회화적 묘사는 <해동기>라는 이미지와도 오버랩 된다.

울퉁불퉁하다는 것은 역동적이고 남성적일 뿐만 아니라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아픔까지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다.

그 내포된 비장미가 중의적으로 깔리며, 화자의 개인적 정서가 직조된 갈등과 대립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살얼음 비끼고, 노을 물들고, 유리판처럼 맑디맑고 순연한 강물은 화해와 구애의 손을 내미는 것이다.

<햇살 환한 날 다시 찾아가서, 무겁고 울퉁불퉁한 내 몸을 보여주고 한 번 더 누워주겠느냐고 물어보려 한다>는 마지막 행의 묘사 또한 얼고 굳어 있었던 화자의 마음이 녹고, 풀리고, 열리는 해동의 과정을 공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대비되는 리트머스용지가 천천히, 소리없이 빨아들이는 강물 한 줄기를 만나게 된다.

벗은 몸 위로 강을 끌어 덮은 여자, 얇다랗게, 말갛게, 유리판같이 얼어서 판판한 주검 같은 그 여자에게서 우리는 純晶한 수정 한 알을 들여다 보게 된다. 이는 아마 어떤 사람의 ‘첫’ 사랑의 ‘첫’ 기억이 아닐까 싶다. 차마 포개어 눕기조차 죄송할 만큼 착하고 순정한 여자. 눈물겹도록 가엾은 여자가 유리판 속에 알몸으로 누워 있다는 것이다......

선뜻 손 내밀어 만질수 도 없는 유리판같은 살얼음으로 덮여진, 차갑게 지적이며, 맑게 聖스러운 임진강은 그렇게 투사되었다.

삶의 더께가 앉은 두꺼운 얼음장이기 전의 ‘살얼음’ 으로 덮여졌다는 이미지에서 당신과 나는 ‘첫’이라는 그 순명한 이슬을, 그 순수가 닿는 시인의 순정한 지평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보여주고, 물어 보고자 하는, 과 같은 어법은 제 몸에 대한 겸손한 양해, 그리고 여자에 대한 지극한 존중이 담겨져 있다. 이런 화자에게 강을 끌어 덮은 全裸의 여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을 것이다.

이처럼 다감하고 수정 같은 한 편의 求愛詩 앞에서 당신이라도 누워 주지 않았을까?

/ 유현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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