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두메가…!” 감탄 절로나는 고즈넉한 길
“이런 두메가…!” 감탄 절로나는 고즈넉한 길
  • 김규신 기자
  • 승인 2010.07.08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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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욱곡마을 전경

 

가 을이면 주렁주렁 달린 감으로 산과 들이 온통 주황빛으로 물드는 고장이 있다.

울주군 범서읍 망성리의 욱곡마을이다. 욱곡마을은 지난해 울산이 수출한 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울산단감의 대표적 산지다. 이곳은 자갈이 많지 않은 지형에다 땅속에 마사와 황토가 깔려 배수가 잘 되는 장점으로 울산 감나무의 주산지가 됐다. 현재 15만여평 규모에 20여가구가 감 재배를 생업으로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밤꽃이 만개했던 지난달 중순께 욱곡마을로 향하는 길을 찾았다. 선바위를 지나 두동 방면으로 이동하다 보면 자그마한 다리 망성교가 나온다.

망성교를 지나자마자 왼편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잘 포장된 2차선 도로가 양탄자처럼 직선으로 깔려있다.

강을 끼고 직진하면 오른쪽으로 대나무 숲이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며 어서 오라는 듯 잎을 나부끼고 있다. 강 건너에도 녹색 대숲이 우거져 있어 눈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렇게 5분여를 걸었을까. 오른편으로 감나무가 몇 그루 보이기 시작한다. 옆으로는 제철을 넘길세라 매실을 따는 아낙들의 장대질이 분주하다.

욱 곡마을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울주군 지정 단감대미수출단지라는 설명이 이곳에서 단감농사가 어느 정도 규모로 이뤄지는지 미리 알려준다.

마을 입구에 커다란 팽나무가 우뚝하니 서 있어 밑둥을 보니 팻말이 있다. 둘레 3.1m에 150~200년 된 나무란다.

▲ 욱곡마을 감나무
이곳부터 지척에 감나무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구불구불 길을 따라 가면 꽃이 져 가는 밤나무들이 진한 향기를 내며 산 중턱 이곳저곳을 차지하고 있어 녹색 숲이 알록달록하다.

길이 좁아져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가 되면 어느새 깊은 숲속에라도 이른 듯하다.

상쾌한 숲의 공기가 온 몸을 감싼다. 도심 가까운 곳에 이처럼 고즈넉한 곳이 있다는 것이 감탄을 자아낸다. 길옆으로는 가지런히 모내기된 논에서 나비들이 군무를 펼치고 있다.

발 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십자 모양의 4거리와 팻말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단감 농장이란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사방의 감나무 과수원에 포위된 꼴이다. 가을이면 앞산이고 뒷산이고 지척에 주황색 감들이 고운 자태를 뽐내 장관을 이룰 것에 마음이 들뜬다.

이윽고 욱곡마을 초입에 들어섰다.

소나무 20~30그루가 위용을 뽐내고 있다. ‘욱곡적송숲’이라고 하는데 수령이 200~300년 됐단다. 그 웅장한 모습에 압도당한다.

어디서인지 뻐꾸기 2마리가 솜씨 발휘를 하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연신 ‘뻐꾹뻐꾹’ 울어댄다.

마을은 옛집과 현대식 주택이 공존하고 있다.

감의 주산지임을 증명하듯 사방이 감나무에 둘러싸여 있고 과수원 곳곳에는 비료포대가 눈에 띈다.

한편 마을회관에 가기 전 왼쪽으로 오르막길이 형성돼 있다. 한실재로 통하는 길이다.

대곡마을 사람들이 울산장을 오고갈 때 넘나들던 길이다. 에메랄드빛 사연호를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길이 연결돼 있다.

뽕밭 수출길 막히면서 쇠퇴

단감 심어 3남매 공부 시켜

▲ 욱곡마을 노인회 총무 김지윤씨

욱곡마을 노인회 총무 김지윤씨

“원래 다 뽕밭이었어. 일본으로 수출이 막히면서 이래서는 굶어죽겠다 싶어 단감을 심기 시작한 거지. 뽕밭 사이로 하나 둘 심었던 것이 이만큼 커진거야.”

마을을 병풍처럼 감싼 수많은 감나무밭을 내려다 보던 욱곡마을 김지윤 노인회 총무(74)는 이곳이 어떻게 단감의 주산지가 됐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박정희 정권 당시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잠사업(뽕나무 재배)을 장려했고 그 때는 천수답이나 산을 개간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허가를 잘 내줬다고 한다. 뽕나무를 심으면 밀가루를 지원해주는 등 혜택도 많아 마을 곳곳이 뽕밭으로 뒤덮였다고 한다.

그러다 70년대 들어 일본 수출이 막히면서 생계를 걱정하게 됐고 마침 마을 주민인 안영원씨가 일본을 방문해 구입해 왔던 신품종 단감 300주가 단감마을로 거듭나는 신호탄이 됐다고 전했다.

처음 1, 2년간 실패를 거듭하던 안씨의 감농사가 이후부터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시작해 6~7년 후부터는 꽤 많은 수입을 올리면서 너도나도 감나무 재배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김씨도 그 영향을 받아 동생이 일구던 뽕농사를 이어받아 감나무농사로 전환했고 그 역시 꽤 짭짤한 수익을 거뒀다고 한다.

욱곡단감은 그 크기와 맛으로 호평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감이라는게 노목이 되면 열매가 작아지는데 우리마을 감은 심은지 얼마 안 된 유목이라 감의 크기가 컸고 맛도 좋아 큰 인기였다”며 “서울 가락시장과 부산 서면에 있는 부일청과에 내다 팔면 진영단감의 인기도 누를만큼이었다”고 기억했다.

“80년대 초반이었을거야. 7천평 정도의 과수원을 일궜는데 연 수익이 1억2천만원이 났어. 지금도 그 정도면 엄청난 돈인데 그 땐 정말 어마어마했지. 감밭 일궈서 3남매 대학까지 공부시킨거야.” 그렇게 전성기를 회상하던 김씨는 “지금은 단가가 떨어져 택도 없어. 반에 반도 안돼. 그래도 어쩌겠어. 평생을 해 온건데.”

김씨는 인터뷰 말미에 이 말만은 꼭 해야겠다고 하더니 대뜸 길을 넓히는 것이 주민들의 숙원이라고 전했다.

그는 “마을로 들어서는 길이 경운기 한 대 정도만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은 1차선이라 농사에 애로사항이 많다”며 “주민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확장이 안되더라. 감 수출로 수많은 달러를 벌어들인 걸 감안해 최소 2차선 길이라도 조성됐으면 한다”고 말을 맺었다. / 글=김규신 기자·사진=최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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