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白人) 전성시대는 끝났는가
백인(白人) 전성시대는 끝났는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6.16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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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키’란 말은 미국인을 통칭하거나 해외에 주둔하는 미군을 비하해서 사용하는 속어다. 특히 2차 대전 후 미국이 전 세계의 군사· 경제· 정치에 개입하면서 생긴 말이다. 그래서 국내외 좌파들은 미국을 비난할 때 이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원래 17세기 유럽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인 네델란드에서 비롯됐다. 상업이 번창하는 곳에는 예나 지금이나 계산적이고 실리를 따지는 사람들이 많다. 당연히 그런 곳은 베푸는 너그러움이나 여유는 상대적으로 적고 인심 사나운 곳으로 낙인찍히기 마련이다.

우리가 가끔 사용하는 ‘덧취 페이(Dutch pay)’란 말의 Dutch는 네델란드를 뜻하는 외래어다. 우리네 풍속처럼 서로 식사 값을 지불하겠다고 몸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밥값만 내고 나가는 냉랭한 네델란드 습속을 엿 볼 수 있는 한 부분이다. 외국인들 눈에는 그런 네델란드인들이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구두쇠’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 네델란드인들에게 ‘양키’란 별칭을 붙였다. 18세기 말 유럽 무역의 중심이 영국으로 이동하면서 이 말은 잠시 잉글랜드 지방 사람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17세기 말부터 신대륙으로 이민 온 일부 네델란드인들이 미국 동부 허드슨 강 유역 뉴잉글랜드 지역에 정착하면서 이민 초창기 동부지방에 사는 미국인을 지칭하는 말로 변했다.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 중에는 넓은 저택과 농지를 소유한 채 여유롭게 살던 남부인들이 상업 위주의 각박한 생활을 하던 동부 출신 북군을 멸시해 사용하는 용어로 바뀌었다. 그 이후 1차 세계대전부터 미국인을 통칭하는 말로 전용되기 시작했는데 약육강식이란 부정적 의미로 고정된 것은 주로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다.

1895년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승전 대가로 요동반도와 대만 그리고 팽호열도를 청국으로부터 할양받았다. 동양 국가로선 처음으로 제국주의 국가가 된 셈이다. 그러나 일본을 견제해야 할 필요가 있던 러시아는 독일, 프랑스를 동원해 이를 제지한다. 소위 ‘삼국 간섭’을 통해 만주에서의 일본 영향력을 차단시켰다. 이때 일본의 영향력을 제지하기 위해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주창한 것이 바로 ‘황화론(yellow peril)’이다. 당시 일본인을 지칭하며 ‘황색인종이 승승장구하도록 내 버려두면 끝내는 백인에게 화(禍)가 미치게 될 것’이란 게 그 주된 요지다. 지금 들으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황당한 억지가 그 시대는 통용돼 일본은 요동반도를 다시 내 놓고 말았다.

지금 월드컵 축구대회를 개최한 남아공화국을 세운 사람들이 바로 네델란드계 후손들이다.

네델란드가 ‘양키’라고 불리던 1652년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 네델란드인들이 들어와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 뒤 1810년 강대국이 된 영국이 이곳을 점령하자 네델란드인들은 내륙으로 더 깊이 들어가 흑인을 내쫓고 소위 ‘보어’국가를 만들었다.

이번 월드컵 경기는 세계 축구경기를 관전하는 게 아니라 새루운 인종의 역사를 쓰는 핏션을 보는 느낌이다. 황화의 주역과 조역이었던 한국과 일본, 백인 우월주의를 표방하던 독일, 양키의 본류인 네델란드, 지류인 미국과 영국 그리고 백인들로부터 핍박받던 흑인이 모여 새로운 역사의 장(章)을 기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난 6월12일 축구경기에서 그리스 백인은 황색인종에게 2대0으로 패했다. 14일에는 세르비아 백인이 흑인에게 1대 0으로 무릎을 꿇었다. 같은 날 황색인종과 브라질 혼혈인들이 맞붙어 백중세를 보인 것은 새로운 장면이다.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백인들이 세계를 휘어잡던 시대는 끝난 것 같다. 오늘 주목을 끄는 축구시합에도 황색인종과 혼혈인 그리고 백인이 뒤섞여 나온다. 백인만 출전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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