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손짓하는 추억의 뱃길
동백꽃 손짓하는 추억의 뱃길
  • 김준형 기자
  • 승인 2010.04.29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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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죽마을-동백섬 -방도리 잇던 항로
처용설화 간직한 채 선착장만 외로워
▲ ▲ 천연기념물 제65호 동백섬. /최영근 기자
>25 < 동백섬 가는 길

외황강에는 남구 황성동 세죽마을에서 울주군 온산읍 방도리로 오가던 뱃길이 있었다. 외항강 하구 뱃길은 말이 강이지 온산만 개운포의 이쪽과 저쪽 사이 2km를 잇는 긴 항로였다. 이름도 세죽나루와 목도나루로 불렸다. 이 이름은 차라리 ‘처용나루’나 ‘개운포나루’라 지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만해도 이곳이 처용설화의 발상지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온산만 처용암 옆을 오가는 뱃길은 1천년 전 신라 헌강왕의 눈길이 머문 곳이고, 조선초기에는 지금으로 치면 해군사령부(개운포영성)의 군함이 정박하던 곳이다. 개운포 8경의 하나인 전함홍기(戰艦紅旗)는 도열한 군함의 붉은 깃발이 아름답고 붙여졌다. 동백섬은 조선시대에도 명성이 자자했던지 지방 수령과 개운포에서 동백섬으로 뱃놀이하던 기생들이 물에 빠져 죽은 사연을 읊은 시가도 전해진다.

방도리는 1980년대 온산공업단지에 편입되면서 철거되기 전까지 꽤 번성한 지역이었다. 방도리에는 일제시대부터 우체국과 파출소가 있었고, ‘목심장’이라 불리던 오일장이 열렸다.

용잠, 용연, 황성, 부곡 등 현재 남구 쪽의 마을사람들은 방도리에서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세죽마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녔다.

그러던 어느 때부턴가 방도리로 가던 뱃길이 바뀌었다. 마을 앞 동백섬을 찾는 관광객이 늘면서 섬으로 뱃머리를 돌린 것이다. 그 때부터는 동백섬에서 다시 방도리로 가는 작은 나룻배가 따로 운항했다.

동백섬은 동해안에서 유일한 상록수림이라는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1962년 천연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됐다.

특히 동백과 후박이 많아 장관을 이루는데, 남해지방 나무 종자가 조류를 타고 이곳에 닿아 자라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동백섬은 1970, 80년대 울산 최고로 손꼽히는 관광지였다. 봄에는 동백꽃을 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45인승짜리 배 두 척이 운항했다. 그러나 섬 생태계가 훼손되자 정부는 1992년부터 20년간 안식년제를 도입하면서 일반인의 출입을 금했다. 2012년 생태조사를 벌여 다시 개방할 지 여부가 논의될 예정이다.

섬 명칭에 대한 이견이 분분한데, 온산읍지는 목도(目島)란 이름이 원래 섬 앞의 육지 마을(공단 편입)을 말하는 것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에는 ‘동백도’로 표기돼 있다. ‘춘도(椿島)’란 명칭은 일제잔재라고 하고, ‘죽도(竹島)’는 매암동에 같은 이름의 섬이 있는데다 고증할 자료가 없다.

현재 철거되고 있는 세죽마을 앞에는 작고 낡은 콘크리트 선착장 두 곳이 그때의 추억을 되살려주듯 아직 남아있다. 그 앞에는 처용설화가 깃든 처용암(울산시기념물 제4호)이 물위로 솟아 있다. 이 선착장에서 처용리로 가는 뱃길도 있었다. 남창장으로 가기 위한 것이었다. 바닷가 사람들은 남창에서 해산물을 팔고 뭍에서 나는 물건을 구해 돌아갔다.

12년간 동백섬행 유람선을 운영한 최해근 씨 인터뷰

하루에도 수천 인파로 북적이던 관광코스

“울산사람들은 물론 부산, 대구, 경주에서도 관광버스를 대절해 찾을 정도로 동백섬은 유명세를 탔었습니다. 봄철 필수 관광코스였던 셈이었죠. 그도 그럴것이 동해안에서는 울릉도를 제외하고 배를 타고 들어가 관광할 만한 섬이 없었습니다. 특별한 섬이었던 거죠.”

1992년까지 12년 간 유람선 ‘황성호’를 운행했던 최해근씨(59·사진)는 당시를 회고했다. “관광이 한창일 때 사람들을 쉴 새 없이 동백섬으로 날랐습니다. 주말이면 하루에도 수천 명이 찾았고, 세죽마을과 동백섬에는 횟집과 상점이 수십 곳에 이르렀죠. ‘세죽 아나고(남방붕장어)’는 최고의 특산물이었고, 꼬시래기(망둥어)도 일본으로 수출될 만큼 명물이었습니다. 해녀들은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싱싱한 멍게, 해삼, 홍합을 좌판을 펼쳐놓고 팔기도 했죠. 개발되기 전 외황강 하구는 그야말로 수산물 집산지였습니다.”

최씨는 이 뱃길의 유래에 대해 설명했다. “원래는 마을사람이나 행인들이 세죽마을에서 방도리까지 오가던 뱃길이었습니다. 나룻배가 다니던 때도 있었는데 보통 장터나 우체국에 가려고 배를 탔었죠. 그러다가 동백섬을 찾는 관광객들이 늘면서 나중에는 아예 유람선으로 운항하게 된 거죠.”

최씨는 지금은 갈수 없는 동백섬, 변한 주변 환경에 대해 말을 이었다.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섬 풍경은 눈에 선합니다.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돌부리 위치까지 모두 기억합니다. 당시는 살던 곳이고 고생스러웠던 생업이어서 몰랐지만, 지금은 그만큼 멋진 경치도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다시 가게 되더라도 항만과 공장이 들어서 주변 환경이 변한 탓에 그 때의 느낌은 받지 못할 것 같습니다.”

/ 글=김준형 기자. 사진=최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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