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출몰해도 올라야 했던 험한 생활로
호랑이가 출몰해도 올라야 했던 험한 생활로
  • 권승혁 기자
  • 승인 2010.04.22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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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주민들이 울산장 오가던 통로 범밭재
산길 곳곳 사람·동물모양 이색바위 눈길
>24 < 범밭재

물자가 귀했던 옛날에는 며칠에 한번씩 서는 장에 다녀오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구슬땀을 흘리며 가꾼 곡식과 잘 손질해 둔 어물, 그리고 땔감을 장에 내다 팔아야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살 수 있었다.

울산시 동구 마골산 능선을 따라 주전으로 연결되는 범밭재는 주전이나 강동 주민들이 울산장으로 왕래하던 고갯길이었다. 범밭재는 ‘뻗은 길’이라는 뜻인데, 예전에 이곳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했다고 한다. 근처 골짜기는 범굴골이라 불렸으며 호랑이를 잡기 위한 포수목이 있었다고 한다.

주전과 울산시내를 이어주는 범밭재는 동구의 중심지인 남목과도 연결된다. 남목3동 옥류천 입구에서 마골산 정상 방향으로 이어진 도린재를 10여분동안 오르다가 오른쪽 길로 꺾으면 범밭재에 들어선 것이다.

길 입구에는 알바위가 있는데 마골산 일대에 분포한 7개의 알바위 중 편의상 알바위Ⅴ로 불린다.

바위를 지나자마자 산길은 몹시 가팔라진다. 범밭재는 편안한 산책길처럼 동서로 길게 늘어져 있는데, 도린재에서 범밭재로 가는 길은 좁고 가파른 오르막이다. 산 아래에는 해송이 무더기로 자라고 있고 오른쪽으로 주전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거센 바람이 범밭재까지 오르던 남목 주민들의 고생을 어렴풋이 느끼게 한다.

산길 곳곳에 재미난 바위들이 있어 등산객의 고달픔을 덜어준다. 경사가 급한 길을 어느 정도 올라가면 맨 먼저 거대한 거북바위를 만난다.

거북이가 앞발을 들고 하늘로 승천하려는 모습이다. 이 바위를 지나면 남근암과 여근암이 차례로 나온다. 마골산에 남근을 빗대 ‘촛대바위’ ‘송곳바위’ 등으로 이름 붙여진 바위는 더러 있지만 아예 ‘남근석’으로 명명한 바위는 이것이 유일하다. 하늘을 찌를 듯 불쑥 솟은 남근암 옆에 오목한 모습을 하고 있는 여근암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산길은 다소 완만해 지면서 부부암이 나타난다. 두개의 바위가 마치 서로 끌어안고 입술을 맞대고 있는 형상이다.

부부암을 지나 좁은 산길을 좀 더 올라가면 갑자기 평지처럼 확 트인 편평한 공간이 나오는데 바로 범밭재다. 이곳은 마골산 정상에 해당하는 곳으로 ‘새평재만디’라고도 불린다. 이곳에는 영락없이 거대한 하마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모습의 ‘하마바위(하마방)’가 자리 잡고 있다. 이제 길은 넓고 편평하다. 좁은 산길을 고생하며 올라온 보람이 있다. 짙푸른 주전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동구 마골산 지킴이 장갑산 씨 인터뷰

동구 주민과 함께 누리고 싶은 보물

“마골산 범밭재는 젊음의 도시인 동구를 상징하는 한편의 드라마입니다.”

며칠 전 울산시 동구청에 ‘동구를 사랑하는 시민의 상상’이라는 제목으로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편지는 마골산에 대한 감상과 관리주체인 행정기관에 바라는 점을 정성스런 글씨에 담고 있었다.

‘동구를 사랑하는 시민’은 바로 마골산 자락에서 살고 있는 장갑산(65·동부동·사진)씨로, 그에게 마골산은 ‘어머니 배꼽 같은 곳’이자 이웃과의 정을 나누는 소중한 장소다.

장씨는 몇 해 전 30여년동안 몸을 담은 현대중공업을 퇴직한 뒤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동구에서 산을 아끼고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버렸다. 그의 이름부터가 산(山)과의 각별한 연(緣)을 말해주고 있다.

등산로 주변에 우거진 잡풀도 베고, 쓰레기도 주우며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건강도 챙긴다는 장씨.

그는 “산 정상에 올라 거북이(거북바위)를 보초로 세워놓고 산의 향취를 한껏 맡으면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마냥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산에 분포한 바위들에 대해 독특한 해석도 내놨다.

“범밭재로 가는 길은 오묘하게 자리 잡은 남근석과 여근석, 그리고 사이좋은 부부암에 이르기까지 마치 동구의 아들, 딸들이 결혼해서 살아가는 과정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러한 산의 기운이 젊은이들을 불러 모아 지금의 자랑스러운 현대중공업으로 대표되는 동구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구청의 등산로 관리에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그는 “산길 중간 중간마다 알바위나 하마바위 등 특이한 지형지물을 팻말로 표시해 둔 것은 좋지만 너무 단조롭다. 범밭재의 호랑이나, 부부암 등을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어 연계시키면 산을 알리는 데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장씨는 울산제일일보가 추진 중인 울산을 소재로 한 스토리텔링 공모전 등에도 전적인 공감을 표시했다. 특히 “마골산의 풍부한 관광자원을 다양한 주제와 방식으로 스토리텔링화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누리자는 것이 구청에 편지를 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 글·사진 = 권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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