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과 가난의 역설로 부르는 ‘기쁨의 도시’

타고르 문학혼 살아있는 인도 ‘예술의 중심’
혼란과 가난의 역설로 부르는 ‘기쁨의 도시’

타고르 문학혼 살아있는 인도 ‘예술의 중심’
  • 이상문 기자
  • 승인 2010.04.19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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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고르하우스의 박물관. 이곳에서는 타고르가 남긴 유물과 저서들이 보관돼 있다.
패트릭 스웨이지가 주연을 맡은 영화 ‘시티 오브 조이’는 캘커타 외곽에 위치한 빈민촌을 무대로 하고 있다.

인생의 의미를 잃고 깨달음과 구원을 찾아 인도로 온 미국인 청년의사 맥스와, 가뭄과 기아 때문에 고향 비하르를 등지고 캘커타로 온 인력거꾼 하자리 팔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빈민들의 생활이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앉은뱅이, 곱사등이, 문둥이 등 정상적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이들이 모여서 오로지 구걸로 살아가는 이 동네를 사람들은 왜 ‘기쁨의 도시’라고 불렀을까? 기쁨과 절망이 극단적으로 대치하는 감정적 역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한 때 대영제국에서 런던에 이어 제2의 도시라고 불렸던 캘커타는 인도의 수도가 델리로 옮겨간 1911년 이후 급속하게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지금의 캘커타는 영국인들이 남겨놓은 유적들만 아니라면 우리가 고정관념처럼 가지고 있는 인도의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 이를테면 혼란과 가난, 불결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일 따름이다. 그래서 라지브 간디를 비롯한 인도의 정치인들은 캘커타를 ‘죽어가는 도시’라고 악담을 했다.

코끼리에서부터 벤츠에 이르기까지 모든 탈것들과 뒤엉켜 주요도로를 아예 주차장으로 만들어 버리기 일쑤고, 수십 명의 하인을 거느리고 땅땅 벼르고 사는 부호들이 살아가는가 하면, 한 끼 식사를 해결할 돈을 벌지도 못하는 막노동자, 병이 깊어 세상을 떠날 날만 기다리는 행려병자들이 공존하며 혼돈의 극치를 이룬다.

풍찬노숙하는 부랑자들의 곤고한 삶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 신생아들은 야음을 틈타서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더러운 강물에 몸을 씻고 빨래를 하며, 피부병에 시달리며 뜬눈으로 밤을 보내는 아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캘커타의 옛 이름은 ‘아난나가르’였다. 벵골어로 아난은 ‘기쁨’이라는 말이고 나가르는 ‘마을’이라는 뜻이며, 캘커타의 빈민촌이 그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셈이다.

▲ 타고르 하우스 부근 재래시장.

그러나 이와 같은 캘커타는 역설적이게도 인도를 대표하는 예술도시이다. 인도의 시성이라 일컬어지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이곳에서 태어나 활동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캘커타는 충분히 예술의 도시라고 칭송받아도 무방하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코리아 / 그 등불 한 번 다시 켜지는 날에 /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이 시는 바로 타고르가 우리나라를 소재로 쓴 ‘동방의 등불’ 가운데 앞부분이다. 이 시의 마지막에서 타고르는 “내 마음의 고향 코리아여 깨어나소서”라고 썼다. 영국의 식민통치 아래 놓여있던 인도의 지식인이 동시대에 일제 치하에서 고통을 받고 있던 한국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담아 쓴 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타고르는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 1929년 타고르가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동아일보 도쿄지국장이었던 이태로가 한국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그것에 응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실어 한국인에게 바치는 뜻에서 쓴 시라고 한다.

우리로서는 세계적인 시인이 한국을 높이 평가해 준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사실이지만, 한 번도 와보지 않은 한국을 ‘동방의 등불’이라고 치켜세운 시인의 상상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역사적 맥락에서 열강의 침략으로 어려움을 겪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나라를 ‘내 마음의 고향’이라고까지 한 것은 적지 않은 엄살이 아닐까.

어쨌거나 타고르는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 라빈드라 사라니의 인력거.
타고르의 집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쉽지 않다. 아직도 영화 시티 오브 조이에서 보았던 인력거가 다니는 라빈드라 사라니라는 거리에서 내려야 한다.

길은 넓지만 그 넓은 길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는 소음과 화물차, 그리고 그 어수선함 사이를 용케도 헤쳐 나가는 인력거의 종소리가 얼혼을 앗아가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뜨거운 햇살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버리면 타고르의 집에 이르기도 전에 탈진해 버릴 것이 분명하다.

타고르의 집은 조용하고 단아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꽃나무들이 집을 둘러싸고 있고, 집 안에는 타고르의 유물들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그곳에서 타고르는 태어났고, 또 죽었다. 한 문호의 숨결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곳은 지금 웨스트벵골 지역 지성의 요람이 되었다. 라빈드라 바라티 대학교가 이 집을 활용하고 있고 인도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가르친다.

극도의 빈곤에서 깨어나고 있는 인도의 정신적 중심은 역시 캘커타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중심이 바로 라빈드라 타고르다.

캘커타 누항의 혼란스러움과는 달리 타고르의 집이 고즈넉한 것은 바로 그런 까닭에 있다.

▲ 캘커타의 길거리에서 터진 상수도관을 활용해 목욕하는 사람들.

 

처음가는 그곳, 이렇게 가세요

직항로 없음… 방콕 거쳐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우리나라에서 캘커타로 가는 직항은 없다. 델리나 뭄바이를 거쳐서 가는 방법이 있지만 캘커타만 목적으로 한다면 방콕을 거쳐가는 것이 가장 좋은 스케쥴이다.

인도여행 중 캘커타로 간다면 역시 델리나 뭄바이로 갔다가 기차를 이용해 이동하는 것이 좋다. 캘커타는 주로 부처님 성지를 여행하다가 가거나 바라나시를 방문했다가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캘커타에서 타고르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숙소에서 행선지를 밝히고 운전기사에게 숙소의 주인이 정확한 위치를 숙지시키도록 하는 것이 옳다. 대부분의 택시나 릭샤의 운전기사는 타고르의 집 위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타고르의 집은 주변 야채, 과일시장과 대리석 사원 등을 둘러보는 일정과 함께해야 하며 반나절이면 모든 일정을 마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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