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權)의 전쟁
권(權)의 전쟁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0.04.07 2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야흐로 시작된 것은 전쟁이다. ‘쩐(錢)의 전쟁’이 아니라 ‘권(權)의 전쟁’이다. 타오르는 것은 단순한 예광탄(曳光彈)이 아니라 독기 서린 안광탄(眼光彈)이다.

권력(權力)은 휘두르고 싶은 힘이면서 안고 싶은 의자다. 그 의자가 쿠션이 될지 가시방석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안락의자가 될지 전기의자가 될지, 당장은 모른다. 그런데도 앞 다투어 앉기를 고대하는 게 권좌(權座)다.

권력의 아편에 취한 군상들- 그들은 불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부나비를 닮았다. 권불십년(權不十年)! 이 말은 권력의 무상함을 전하려 했던 선인들의 피울음이다.

‘권력’이란 표현은 ‘뒷돈 선거여론조사 사건’의 수사 결과를 담은 검찰의 발표문에도 있었다. 보도자료의 제목은 ‘지역언론과 토착권력간 유착에 경종’이었다.

“정치는 현실” “정치는 살아 꿈틀거리는 생물” “그리고 정치는….”

또 더 있다. 야사(野史)가 아닌 정사(正史)에 올릴 만한 격언이다.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정치무상(政治無常)을 터득한 정계 원로들이 남겼을 이 격언은 폐부를 찌르는 데가 있다. 지방선거가 두 달 안쪽으로 다가오면서 그런 느낌을 더 진하게 느끼는 정객들이 있다.

K 의원이 단체장 출마를 선언하던 날 회견장에는 집행부 고위간부 출신 지방선거 후보도 섞였다. 직전까지도 현직 단체장과 한솥밥을 먹었던 그는 계면쩍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어쩌겠습니까? 지역구 때문에”.

‘고뇌’가 ‘고통’의 수준으로 느껴지는 정객들도 있었다. 양대 단체장 후보 진영의 대변인 직을 본의 아니게 떠맡았던 지방의원들이 바로 그들. 무언(?)의 압력이 그들을 짓누르는 순간들이 있었다.

어느 후보 진영을 영문 모르고 찾았다가 엉겁결에 찍힌 단체사진 탓에 덜미가 잡혀 혼쭐이 난 지방의원들도 있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주눅 들게 만들었던 것일까?

그 해답을 노(老)정객이자 새로운 단체장 도전자인 L 전 의원이 내놓았다. ‘일부이긴 하지만’이란 꼬리표가 달린 출마회견문은 그런대로 음미할 만한 값어치는 있어 보였다.

“시의원 구의원이 시정과 구정을 살피기보다 국회의원 공항마중에 바쁘고, 초상집 동행이 우선이고, 국회의원 사모님 운전기사 노릇이나 자청하는 그런 꼴은 더 이상 보기 민망합니다.”

70을 바라보는 그는 바로 ‘보스 정치’ ‘해바라기 정치’ ‘수구리 정치’의 폐단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굶주려도 풀은 먹지 않는 호랑이로 살겠노라” 다짐했다는 그는 이른바 ‘수구리(=수그려) 정치’가 전국적 현상이라고도 했다.

‘뒷돈 선거여론조사 사건’에 대한 독설적 평가도 시선을 끌었다.

“대통령도 시장도 구청장, 군수도 시의원과 구의원, 군의원도 모두 OO당이면 뽑아주고 지원해준 울산시민의 성원과 은혜를 여론조사 조작이라는 비열한 배신으로 보답하려는 천인공노할 사건이 부끄럽게도 슬프게도 울산에서 발생했습니다.”

“OO당 공천이면 무조건 당선된다는 자만과 오만과 방자에서 저질러진 사건입니다.”

호남 같았으면 또 다른 정당이 그런 비판을 받았을 것이었다.

바야흐로 시작된 것은 전쟁이다. ‘쩐(錢)의 전쟁’이 아니라 ‘권(權)의 전쟁’이다. 유력해 보이던 시장 후보 한 사람이 백기를 들고 물러난 지금 또 다른 ‘권(權)의 전쟁’이 은밀하게 바닥정치권을 파고들고 있다.

마땅한 방제 시스템도 없이 정치의 풀뿌리를 고사시키는 ‘제초(除草)의 정치’가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권(權)의 전쟁’이 ‘제초(除草)의 정치’와 동의어로 통하는 날이 머잖은 것 같다.

/ 김정주 편집위원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