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가르기
편 가르기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0.03.31 2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권자 심판의 날’을 두 달 남짓 앞둔 어느 날 동네 목욕탕에서 작은 입씨름이 벌어졌다. 울산의 선거판을 두고 어른 유권자 둘이 서로 한 마디씩 한다는 게 가벼운 언쟁으로 번졌다.

“마치 어릴 때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땅따먹기 놀이판 같아.”

“아니지. 줄 세우기, 편 가르기, 세 불리기가 판치는 거 보면 영락없는 야바위판이지.”

땅따먹기라면 그래도 룰은 있다는 마무리 말로 입씨름은 그쳤다. 일정한 공간 안에서 순서 지켜 가며 승부를 다투는 놀이이니 동등한 기회는 주어져 있겠다, 여기에 지략과 손놀림이 잘만 따라주면 정복과 소유의 욕구쯤이야 거뜬히 챙길 수 있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정리된 결론은 그랬지만 다른 방식의 놀이는 사정이 좀 다르다. 야바위판까지는 안 가더라도 줄 세우기, 편 가르기, 세 불리기에는 상식을 뛰어넘는 계략이 필수조건이다. 공정한 게임의 법칙 같은 건 잠시 개인 사물함에 감춰 둬야 한다.

“정치는 현실이야. 친이(親李)고 친박(親朴)이고 간에, 다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거야.”

정치의 외길을 걸어 왔다고 자부하는 한 중진 국회의원이 던진 이 말은 정곡을 찌르는 데가 있다.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적 이반(離反) 현상이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판박이라도 한 듯 되풀이되고 있다. 바야흐로 줄 세우기, 편 가르기, 세 불리기가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오후, 남구 삼산동의 강길부 의원 캠프에서 흥미로운 보도자료가 날아들었다. 권기술 전 국회의원이 강 의원을 적극 지지하겠다고 다짐했다는 내용이었고, 사진은 두 종류가 따라붙었다. 강 의원과 권 전 의원이 다정하게 포즈를 잡은 사진이 그 하나였고, 여럿이 함께 찍힌 사진이 다른 하나였다.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 캠프에선 “여럿 찍힌 사진은 제발 취급하지 말아 달라”는 전갈을 간곡한 어조로 보내 왔다. 그 이유를 찾는 데 걸린 시간은 아주 짧았다. 여럿 찍은 사진 속에는 예기치 않았던 시의원 2명이 끼여 있었던 것.

입장 난처해진 시의원 2명 가운데 1명이 계면쩍게 웃으며 질문에 답했다. “모 시의원 권유로 영문도 모르고 찾아갔고, 얼떨결에 같이 기념사진을 찍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바로 이틀 후인 30일 오후, 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선 비중 있었던 이운우 예비후보의 긴장감 넘치는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이 역시 ‘뜻밖의 사건’으로 분류됐다. 그가 외쳤던 ‘3선 저지’의 구호는 처음 대상이었던 박맹우 시장이 아닌 강길부 의원을 겨냥하고 있었다.

두 경우 다 특정 캠프의 ‘세 불리기’ 시나리오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결과는 ‘줄 세우기’ ‘편 가르기’로 보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그런 사례는 야권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일찌감치 ‘반(反)한나라 반(反)MB’의 기치를 펄럭이며 닻을 올렸던 후보 단일화를 위한 ‘야4당 선거연대’는 두 달도 채 못 가서 (당사자들끼리 서로 주장하는) ‘패권주의’라는 암초에 부딪혀 그만 좌초의 위기에 빠진다. 그 결과는 31일 오전과 오후로 나눠진 ‘공약 발표’와 ‘야3당 정책연대 선언’이라는 독자 행보로 나타나고 만다.

“정치는 현실이야. 친이(親李)고 친박(親朴)이고 간에, 다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거야.”

‘그분의 말씀 백번 맞다’는 대답 듣기를 원하는 것인지, 정치에 몸담은 분들의 언행은 어찌 그리 서로 닮은 데가 많은 것일까?

‘정치판의 아마추어’라는 놀림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한 정치신인이 노련한 고수의 응수타진을 그럴싸한 답변으로 받았다.

“프로의 반칙보다는 아마추어의 진정성이 더 통하는 때가 반드시 있을 겁니다.”

/ 김정주 편집위원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